우리나라에는 '후르시초프'라고 알려진 니키타 세르게예비치 흐루쇼프(Ники́та Серге́евич Хрущёв)는 한때 소비에트 연방공화국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인물이다. 그는 1953년부터 1964년까지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의 국가원수 겸 공산당 서기장을 지냈으며 1958년부터는 소련 총리 겸 소련 국가평의회 의장을 지냈다.

공산주의 종주국의 자도자였지만 흐루쇼프는 냉전시대를 끝낸 정치인으로 더 유명하다. 그는 스탈린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였고 대외적으로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와의 공존과 협력을 모색했다. 그의 반(反) 스탈린 정책은 소련을 모델로 한 사회주의 국가들에 충격과 반향, 거부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흐루쇼프의 정치인생 말년은 그리 순조롭지는 않았다. 스탈린을 비판하고 격하시켰지만 흐루쇼프 또한 스탈린과 별반 차이없는 정치스타일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집단지도 체제를 무시한 정책 결정을 통해 반대파를 다수 만들었다. 다만 스탈린과 다른점이라면 대대적인 숙청을 벌여 반대파를 제거하지 않았다는 것이겠지만. 엎친데 곂친격으로 농업 정책이 대실패로 끝났으며 결정적으로 국민의 신망을 잃게 된 계기는 쿠바 사태에서 미국에 고개를 숙이는듯한 인상을 줬기 때문이다. 결국 흐루쇼프는 1964년 10월 13일 중앙위원회의 결정으로 실각되었다.

각설하고, 흐루쇼프는 유년시절을 우크라이나에서 보냈다. 그래서인지 한때는 흐루쇼프를 우크라이나 태생으로 아는 이들이 제법되었다. 생전에 본인 스스로는 러시아인임을 강조했지만, 어린시절의 좋은 기억 때문이었는지 흐루쇼프는 우크라이나 전통복장을 한 모습으로 공식석상에 종종 나타났다. 더불어 수도 키예프에 자신의 별장을 가지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키예프에 위치한 흐루쇼프의 별장은 그의 생전에는 무척 화사한 모습이었을지 모르겠지만, 그의 인생 말년이 순탄치 않았고 업적이 저평가 된 탓인지 현재는 관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폐허가 된 모습이었다.

이미지로 건물 외부와 내부, 그리고 주변 모습을 소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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