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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러시아에서는

'분쟁은 분쟁, 문화는 문화' - 일본문화를 사랑하는 러시아인들

러시아와 일본은 한때 전쟁이란 극단적인 형태로 다투던 사이였습니다. 이는 러일전쟁이라 불리우는 직접교전과 세계2차대전이란 간접교전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양국은 두 번의 전쟁에서 1승 1패(러일 전쟁 일본승, 2차대전 러시아(당시 소비에트 연방)승)를 기록하게 되는데요. 결과적으로 더 큰 피해를 입은 나라는 일본입니다. 러시아는 전쟁 패배로 영토확장과 국제적 위상에 타격을 입은 정도이지만 일본은 국가존망에 해당되는 타격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러시아 역사상 몇 없는 패배는 그네들 자존심을 상하게는 했겠지요.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이 두 국가는 1954년 부터 현재까지 한 가지 큰 외교적 분쟁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2차대전 패전으로 일본으로부터 러시아가 전쟁보상으로 받아낸 북방영토 영유권 분쟁이 그것인데요. 북방영토란 쿠릴열도 4개섬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북방영토'라는 명칭은 일본측에서 부르는 명칭이고 러시아는 개개섬의 명칭으로만 부르고 있습니다. 
 

모스크바 일본궁도 도장의 사범들 : 이들은 참관객들에게 단지 활쏘기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이보다 중점을 두고 설명하는 것이 일본식 예의범절이다.  


그간 양국 위정자들이 사이에서 여러가지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가볍게 요약하자면, '원래 우리꺼였으니까 돌려달라', '조건부로 2개 섬만 돌려주겠다', '왜 준다고 하고 약속을 안지키나?', '그런말 한 기억이 없다', '그럼 국제법으로 하자', '맘대로 해라', '2개 섬 뿐만 아니라 4개 섬 모두 우리꺼였으니 돌려달라', '2000년도에 평화조약 체결을 하겠다',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는가?', '묵묵부답' 순으로 반백년 넘게 영토를 가지고 지루한 분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도 일본의 위정자들은 이 북방영토에 대해 꽤나 신경을 쓰는 모습입니다. 선거전에 북방영토 수복은 이미 단골 공약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더불어 틈날때마다 러시아측에 비판을 곁들인 영토반환요구를 합니다. 이에 반해 러시아 쪽 주요인사들은 일본의 날이 선 공세에 대해 공식적인 맞대응을 하지 않는 형태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을 하지 않을뿐 행동으로 입장표명을 하곤 합니다. 얼마전 일본측의 공개적인 북방영토 반환요구 발표이후 뿌찐(푸틴) 총리는 거의 즉각적으로 북방영토 방문을 단행한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쉽게 이야기 하자면 '마음대로 떠들어라, 그래도 우리땅이다!' 라는 것을 무언의 형태로 보여준 것입니다.
 
이렇듯 전쟁도 했고, 지금도 여전히 외교상으로 껄끄러운 부분을 공유하고 있으니 우리 경우로 반추해 보면 양국 각계각층에서 꽤나 첨예하게 대립할것 같습니다만, 그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재미있는 점입니다. 

일본인들의 경우는 정확히 어떻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만 적어도 러시아인들은 일본과 관련된 것에 대해 그다지 껄끄럽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정반대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는 동양국가 선호도만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얼마전 러시아 리서치 회사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본은 아시아 국가순위 가장 윗줄에 놓여 있습니다.


물론 러시아인 남녀노소 모두가 일본 문화나 제품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전방위적인 사랑을 하는 것은아닙니다만, 꽤 많은 이들이 여러부문의 일본 문화나 제품들을 선호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몇 가지 실례를 들자면 일본 자동차들에 대한 신망은 세계 유수의 자동차 메이커들과 같은 선상에서 평가되고 있으며 망가로 불리우는 일본만화나 재패니메이션 등은 젊은이들 사이이게 상당히 인기가 있습니다. 이는 매년 에니메이션 페스티발, 코스튬플레이 등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젊은층에 한해서입니다만, 일본 음악들도 상당히 인기를 끌고 있으며 축소지향 일본인의 대표적인 상품인 TV나 컴퓨터, 휴대폰 등의 전자제품 역시 높은 퀄리티를 가진 믿을 수 있는 제품이라 여겨져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특히 한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모스크바 등 대도시에서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일본식 스시바는 자리가 없어서 대기손님이 줄을 설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습니다. 스시바는 비즈니스 미팅장소로 일반화 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젊은층에서는 패밀리 레스토랑 수준으로 대우받고 있습니다.

'한류'가 영화와 방송컨텐츠, 음악을 가지고 아시아를 넘어 프랑스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면 '일류'는 문화 컨텐츠 뿐만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아시아 문화의 대표주자로 러시아에 널리 퍼져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일본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근래들어 갑자기 생긴것은 아닙니다. 공산주의가 붕괴된 직후인 90년대 초 러시아에 최초의 일류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유는 2차대전 이후 몰락했던 일본이 자본주의 국가로 성공적으로 변모한 것에 대한 경제적 관점의 관심이 그 시초입니다. 더불어 이때를 기점으로 일본기업의 러시아 진출이 유행처럼 번지게 됩니다. 이는 우리나라 기업들 역시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90년대 중반들어 이러한 관심은 급격히 식게됩니다. 일본에 문제가 있었다기보다는 자국 정치, 경제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이었기에 러시아인들에게는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일류가 시작된 시점은 뿌찐(푸틴) 집권이후인 2000년대 초반입니다. 어느정도 경제상황에 여유가 생기고 경제 위기 이후 상당수 본국으로 철수했던 일본기업들이 다시 본격적으로 러시아 시장을 공략하면서 일자리 창출 및 문화교류가 붐이 일었기 때문입니다. 이때는 일본어 교과서가 꽤나 잘 나가던 시절입니다. 이후 공산주의 시대의 끝 혹은 그 이후 태어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일본 문화, 특히 에니메이션에 대한 마니아층이 형성되게 됩니다. 그러던 것이 점차 범위가 넓어져 현재에 이른 것입니다. 

최근에는 러시아 중산층을 중심으로 일본문화에 대한 또다른 지류가 퍼져가는 중인데요. 앞서 언급한 최신 문화나 상품이 아닌 일본인들의 정신적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입니다. 일본의 무사도나 게이샤, 궁도 같은 것이 그것인데요. 전시회, 관련서적, 전통문화 체험행사 등이 근래들어 인기 저변을 넓혀가는 중입니다. 새롭거나 배우는 것을 즐기는 러시아인들은 일본 특유의 절도와 세세한 법칙에 특히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서양인들은 아시아의 사상이나 문화를 신비롭다거나 기독교적 초월성과는 성격이 다른 신비로움이 있다고 표현을 하곤 하는데요. 러시아인들은 대륙의 동양문화와는 확연히 다른 일본의 전통문화에서 그 신비감을 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래 이미지들는 얼마전 모스크바에 문을 연 궁도도장의 풍경을 담은 이미지들입니다. 정규 수강생을 둔 형태가 아니라 관람객들에게 궁도를 설명하고 체험할 수 있는 체험형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함께 둘러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