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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러시아에서는

[화보]빅토르 최의 21번째 기일에 슬퍼하는 러시아 젊은이들


지난 15일은 러시아에서 그룹 끼노(키노)의 리더이자 전설의 뮤지션으로 불리우며 소비에트 연방시절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이글라)의 주연배우였던 빅토르 최(1962.6.21 - 1990. 8. 15)의 21주기였다. 

21년전인 1990년 8월 15일 빅토르 최는 레스느이 호수에서 새벽 6시까지 낚시를 하고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숙소로 출발했다. 오후 12시 28분  빅토르가 슬로까따우시 도로 35km지점을 통과하고 있을 때  맞은편에서 대형 버스가 접근하고 있었다. 불행히도 빅토르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곧이어 두 차량은 정면충돌했다. 빅토르 자동차는 충돌 후 18미터나 밀려나 처참하게 찌그러져버렸다 . 빅토르 최는 핸들이 가슴에 박혀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그러나 빅토르 최와 충돌한 버스의 운전기사는 누구인지 끝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빅토르가 사망한지 4일 뒤인 1990년 8월 19일 오전에 빅토르의 장례식은 레닌그라드의 보거슬라브스끼 묘지(Богословский кладбище)에서 거행됐다. 그의 장례식 바로 다음날부터 뻬쩨르부르그에서는 자살시도가 30%이상 늘어났다. 대부분 21세 이하의 젊은이들이 자살을 시도했으며, 실제로 5명의 젊은이들이 빅토르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자살을 했다.

빅토르 최는 단순히 인기만 있었던 가수는 아니었다. 그와 그의 그룹 ‘끼노’는 그 시대의 전설이자 영웅이었으며, 80년대 후반 러시아 젊은이들의 저항의 상징이었다.

그의 생의 마지막 두해에 빅토르의 삶은 성공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는 당시 전 러시아의 젊은이들에게 절대적인 지지와 인기를 얻고 있었다. 빅토르는 수많은 러시아 순회공연과,  영화에까지출연해 인기와 명예, 금전적인 성공 그리고 사랑까지 얻게 되었다. 심지어 당시에는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 순회공연(1990년 봄)까지 진행했으며 이후 한국 공연까지 추진중이었다. 하지만 그가 사고로 사망해서 끝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빅토르 최는 80년대 러시아 청년문화의 아이콘이었지만 당시 세대에게만 기억되는 뮤지션은 아니다. 그가 활동할 당시에는 태어나지도 않은 현 시대의 젊은이들에게도 사랑받고 기억되는 인물이다.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에서는 저 유명한 ‘빅토르 최의 벽’이 있다. 멀리서 보기에는 지저분하게 잔뜩 낙서를 해놓은 주차장 옆의 너덜거리는 벽이지만 가까이 가보면 그를 향한 러시아인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그리 넓지 않은 이 벽은 지난 십 수 년간 빅토르 최의 팬들이 덧칠한 다양한 글과 그래피티로 매년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다.

빅토르 최의 이미지는 입꼬리에 담배를 매달고 있는 모습으로 대표 된다. 그래서인지 그를 추모하는 이들은 무덤 앞에 헌화하듯이 담뱃불을 붙여 그의 죽음을 추도하곤 한다. 혹은 벽에 구멍을 내 그 안에 동전을 끼워넣기도 한다. 저승길 노자돈이라도 주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록을 하는 젊은이들(머리색깔부터 심상치 않은)이 삼삼오오 모여 맥주 한 병씩을 들고 빅토르 최의 벽 앞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지난 15일 빅토르 최의 21주기를 맞이해 이른 아침부터 아르바트 거리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빅토르 최의 죽음을 애도했다. 지난해 20주기가 제법 규모있게 치뤄진 것에 비해서는 다소 한산한 모양새였고 다소 방종한 느낌도 지울수 없지만 그것 역시 현시대 러시아 젊은이들이 빅토르 최의 죽음을 슬퍼하는 방식이리라.

지난 8월 15일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 '빅토르 최의 벽' 앞 풍경을 이미지로 둘러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