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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러시아에서는

누가 안현수를 비판할 것인가?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이 시작되기 전부터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심지어 이번 동계올림픽 국가대표 중 김연아 다음으로 지명도가 높은 선수가 러시아 국가대표인 안현수로 보일 정도다. 우리 언론의 카메라는 그의 주변에 몰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며, 안현수의 여자친구까지 방송에서 화제가 되는 중이다. 심지어 러시아 언론에서는 이러한 우리 언론의 보도를 관심있게 다루는 중이다. 양국에서 핫(hot)한 선수임에는 틀림없다. 

 안현수는 지난 2011년 12월 28일 공식적으로 러시아 국적을 취득했다. 귀화명은 익히 얼려져 있다시피 빅토르 안이다. 러시아 빙상연맹 홈페이지에 게재된 안현수의 개명과 관련된 인터뷰 내용을 보면 빅토르라는 이름은 크라브초프 러시아빙상연맹 회장과 아버지 안기원씨 등과 논의를 한 끝에 결정한 이름이라고 한다.

 안현수가 자신의 러시아 이름을 빅토르로 선택한 첫 번째 이유는 빅토르라는 이름이 ‘빅토리(승리)’라는 발음과 유사해 자신에게 행운을 가져다 줄거라 여겼다는 것이다. 둘째로 한국과 러시아 양국에서 유명한 전설적인 록가수 빅토르 최 처럼 러시아에서 성공하고 싶다는 바램을 담았다고 한다. 세 번째로는 러시아인들에게 쉽고 친근하게 기억되는 이름이라 선택했다고 밝혔다.

 안현수의 개명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안현수 본인이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현수’라는 한국 이름이 러시아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운 것도 있겠고, 승리를 가져다 주는 행운의 이름이라는 이유로 빅토르를 선택한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안현수의 결심이 담긴 것으로 보였다. 러시아 문화적으로 보면 안현수처럼 이미 널리 알려진 유명인의 경우 굳이 이름을 바꿀 필요가 없었다(지금도 러시아 언론 상당수는 빅토르 안과 안현수를 병기해서 사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명을 한 것은 당시 자신을 홀대했던 한국 빙상연맹에 대한 미련의 끈을 끊은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귀화 당시 우리나라에서 관련 소식이 화제를 모았던 것 이상으로 러시아에서 안현수의 귀화가 주목을 받았었다. 러시아 언론들은 당시 지면 기사와 인터넷 기사는 물론이거니와 공중파 방송에서 조차 꽤 장시간(4분 분량)동안 관련 소식을 비중 있게 보도했었다. 대체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당시 신문제호를 보면 그런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다.

‘러시아, 챔피언을 귀화시키다!’ – 젠 자 드뇸 스포츠
 
‘한국인 안현수 러시아를 위해 소치에 출전한다!’ – 베스치 뉴스
 
‘러시아, 바이애슬롯 선수를 수출하고 쇼트트랙 챔피언을 수입하다!’ – 모스크바 노보스치
 
‘한국, 우리를 돕다!’ – MK
 
’3개의 금메달을 딴 한국의 올림픽 챔피언 2014년 러시아를 위해 소치 올림픽에 출전한다!’- 콤소몰스까야 프라브다
 
‘러시아, 황금 스케이트를 귀화시키다!’ – 코메르산트


 안현수는 한국에서 극과극의 영광과 좌절을 맛봤다고 할 수 있다. 안현수는 올림픽에서만 3개의 금메달과 1개의 동메달을 획득한 쇼트트랙 종목의 세계적인 선수다. 최근 몇 해를 제외하면 한국 동계올림픽 선수단의 에이스였다. 하지만 한국빙상연맹과의 갈등과 무릅부상, 소속팀의 해체 등이 이어지며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한국에서 운동을 접을 위기에 처했었다. 여느 선수 같으면 운동을 접고 다른 진로를 모색했을 법도 하지만 안현수는 선수로써 본인의 가치가 여전하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고, 러시아빙상연맹은 이러한 안현수에게 러브콜을 보낸것이다.

 이렇듯 영광은 멀고 좌절이 가까운 상황에서 안현수의 개명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본인이 원하던 기회를 준 약속의 땅 러시아에 녹아들기 위한 노력이자 제 2의 빅토르 최를 꿈꾸며 매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러시아 입장에서 이번 소치 동계올림픽은 국가 자존심이 걸린 이벤트다. 최근 수 차례 하계, 동계올림픽에서의 지속되는 성적 하락은 러시아 입장에서는 꽤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소련)시절 동계 스포츠의 절대 강국에서 이제는 간신히 10위권에 턱걸이 하는 성적을 내는 국가로 하락한 위상을 다시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국선수들을 육성해 유망주를 키우는 것이 최우선이어야 하고 러시아 또한 그간 이를 중점적으로 시행하고는 있지만 러시아의 차세대 국가대표들의 성장이 더딘 것이 문제였다. 러시아는 이번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반드시 납득할만한 성적을 내야만 하는 상황이기에 유망주들의 성장을 마냥 기다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안현수는 러시아 입장에서는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 안현수는 이미 검증된 선수이자 소치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올해 만 28세 밖에 안되는 젊은 선수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간 쇼트트랙 종목에서는 이렇다할 성과가 없었던 러시아 입장에서 틈새 종목에서 귀중한 메달을 선물할 수 있는 선수임과 동시에 자국 유망주들에게 쇼트트랙 노하우를 전수해줄 수 있는 베테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는 이미 지난 몇 회의 국제대회에서 성적으로 증명 되고 있으며, 우리 쇼트트랙 선수단은 과거에는 안중에 없던 러시아 선수단이 라이벌팀이 된 상황이다.

 안현수 입장에서도 러시아는 약속의 땅과 같았을 것이다. 은퇴의 기로에서 재기에 발판을 마련해 줬으며 재기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러시아 빙상연맹도 안현수의 귀화를 성공으로 바라보고 있다. 더불어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에서 두 개의 메달 이상을 기대하고 있다. 그 근간에는 바로 안현수가 있기 때문이다.

 안현수의 귀화와 러시아 국가대표로 선전을 매국으로 폄하할 생각은 전혀없다. 다만 아직까지 붉은색에 영문으로 RU(RUSSIA) 이니셜이 적힌 트리코(쇼트트랙 경기복)를 입은 안현수가 낮선 것 뿐이다. 여전히 태극기가 선명한 파란색 혹은 검은색 트리코의 안현수에 익숙해져있기 때문이다.

 귀화 당시 안현수가 러시아 언론과 진행했던 인터뷰 말미 멘트가 인상에 남는다.

‘이제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안현수는 쇼트트랙 1500미터 동메달로 건재를 과시했고, 1000m에서는 러시아에 올림픽 최초로 쇼트트랙 금메달을 선사했다. 러시아 빙상연맹의 선택과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한 셈이다. 안현수의 올림픽은 이번으로 끝이 아니다.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를 보면 평창 올림픽에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갈 것을 강력히 시사했다. 

 러시아에서 안현수와 같은 스포츠 귀화 사례는 그간 몇 번 있어왔다. 농구에서 한 건(2003년 미국 농구선수 존 로버트 홀든 – 2007년 유럽 선수권 대회 우승의 주역), 동계 올림픽 종목인 피겨부문에서 두 건(2008년 일본인 유코 가와구치 – 2010년 유럽 챔피언쉽 페어부문 금메달, 우크라이나 출신 피겨선수 따찌야나 발라사좌르(타티아나 볼로소쟈르) – 2011 세계선수권대회 페어부문 은메달)이 있었다. 선행된 스포츠 귀화사례는 안현수와 마찬가지로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