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발레의 계승
  -17세기 말경 프랑스로부터 들어온 발레는 처음 얼마동안 서구발레의 모방에 불과.
  -19세기 초 프랑스 혁명의 전화를 피해 나온 ‘디데로’의 혁신에 의해 새로운 활로를  찾게됨. (발끝으로 밸런스를 유지하는 ‘폰반테’ 라는 기법과 ‘파.드.두‘라는2인 무용 형태의 고안. 여기에 코카서스와 러시아 전통무용을 가미하여 조화를 이루도록 함.

◎1847년 안무, 연출가‘프티파’가 프랑스에서 상뜨 뻬쩨르부르그로 찾아와‘파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등을 연출하면서 러시아 발레에 로맨티시즘의 꽃을 피우게 함.
   *그무렵 모스크바의 볼쇼이 발레단 발레에서는 고르스키의 지도 아래 로맨티시즘과  대조를 이루는 리얼리즘이 많이 구사되고 있었다.

◎러시아 발레에 환상과 스펙터클을 도입
  -디아길레프가 이끄는 러시아 발레단에는 연출가 포킨과 안나파블로바 니진스키등의 무용가가 있었음.(전통 발레의 특징과 과장된 표현을 거부, 자연스러운 동작추구, 차이코프스키 등의 종래음악에 대하여 드뷔시, 라벨, 스트라빈스키 등의 다소 위화감 있는 음악도 과감히 채용.)

◎오늘날의 발레
(러시아 혁명후 승계된 발레는 프티파와 고르스키의 고전발레였다 : 라브로프스키의 작품들은 대단한 성공을 거둠)

  -1910년에 출생한 천재 발레리나 블라노바는 세계적 명성을 얻음.
  -1930년대 이후 공산주의 선전활동의 일익을 담당하게 된 [파리의 불꽃]같은 현실주의적 경향이 강한 작품도 상영됨. 현재는 [매혹의 울림]이라는 현대적 작품도 상영. 기본적으로 고전발레의 정통성을 중요시.
  -볼쇼이 발레에서는 로디온 쉐드린이 부인인 발레리나 마야 프리세프카야를 위해 쓴  [카르멘슈트], [안나 까레리나]가 공연되어 찬사를 받았다. 남자 무용가 바실리예프는  빼놓을 수 없는 최고의 발레리노였고, 서방으로 망명한 누레예트와 바리시니코프는 세계 무대에서 대표적인 남자 무용가로 활약했다.

◎러시아 오페라의 명작은 보로딘의 [이고리공], 무소르그스크의 [보리스 고두노프], 차이코프스키의 [예브게니 오네긴], [스페이스의 여왕]등이다. 혁명 후 작품으로는 쇼스타코비치의 [까쩨리나 이즈마일로바]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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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봉희
    2007.12.10 00:26 신고

    담아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