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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2프로 부족할때/러시아 음악과 가수

빅토르 최 - 우리시대의 전설

정확하게 15년하고 2일전에 자동차 사고로 빅토르 최(빅떠르 로베르또비치 쪼이<Виктор Робертович Цой (1962-1990)>가 사망했다. 그는 록 가수였으며, 그룹 '키노'의 리더인 동시에 1000만 관객 이상을 동원한 영화 <이글라>의 주연배우로도 출연했던 만능 엔터테이너였다.

그의 삶에 마지막 해 빅토르는 라트비아에 자신의 다차(별장)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고 있었다. 1990년 8월 15일 레스느이 호수에서 새벽 6시까지 낚시를 하던 빅토르 최는 자신의 승용차 <마스크비치(모스크바시민이란 의미)-2141>를 130km이상의 속도로 몰고 숙소로 출발했다.

12시 28분  빅토르가 몰던 <마스크비치-2141>가 슬로까따우시 도로 35km지점을 통과하고 있을 때  맞은편에서 60~70km의 속도로 <이카루스-280>이라 불리우는 대형 버스가 접근하고 있었다. 불행히도 빅토르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곧이어 두 차량은 정면충돌했다. 빅토르의 <마스크비치>는 충돌 후 18미터나 밀려나 처참하게 찌그러져버렸다 . 빅토르 최는 핸들에 가슴을 찍힌 채,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그러나 빅토르의 <마스크비치>와 충돌한 <이카루스>의 버스운전기사는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빅토르가 사망한지 4일 뒤인 1990년 8월 19일 오전에 빅토르의 장례식은 쌍뜨 뻬쩨르부르그(당시 레닌그라드)의 보거슬라브스끼 묘지(Богословский кладбище)에서 거행됐다. 그의 장례식 바로 다음날부터 뻬쩨르부르그에서는 자살률이 30%이상 늘어났다. 대부분 21세 이하의 젊은이들이 자살을 시도했으며, 실제로 5명의 젊은이들이 빅토르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자살을 했다.

빅토르 최는 단순히 인기만 있었던 가수는 아니었다. 그와 그의 그룹 ‘키노’는 그 시대의 전설이었으며, 80년대 후반 러시아 젊은이의 상징이었다. 그의 생의 마지막 두해에 빅토르의 삶은 성공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는 당시 전 러시아의 젊은이들에게 절대적인 지지와 인기를 얻고 있었다. 빅토르는 수많은 러시아 순회공연과,  영화에 출연해서 인기와 명예, 금전적인 성공 그리고 사랑까지 얻게 되었다. 심지어 당시에는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일본 순회공연(1990년 가을)까지 진행했었다.

이미 그가 사망한지 1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그의 음악은 살아있다. 빅토르가 사망한 후 그룹 키노는 생전 빅토르의 목소리를 담은 새로운 앨범을 발표했다. 행운이었다. 빅토르의 차 트렁크에서 빅토르 최의 목소리가 담긴 레코더가 발견된 것이다.  

현재 러시아에서 그룹 <키노>의 곡들은 다시 리메이크 되고 있으며, 다양하게 재해석되고 있다. 더불어 예전 <키노>의 전성기때와 마찬가지로 현재 러시아 인기곡 차트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도 러시아의 라디오에서 빅토르의 음악은 자주 들을 수가 있다.

그의 노래 <혈액형(그루빠 끄로비 Группа Крови)>은 러시아 내에서 20세기 최고의 곡으로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