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상징으로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아마 끄레믈(Кремль)이 그 수위를 차지할 것이다. '크렘린'이니 '크레믈린 궁전'과 같은 영어식 표현으로 신문과 방송에서 소개되곤 한다. 그러나 끄레믈(Кремль)은 사실 일정한 성 의 이름은 아니다. 끄레믈의 원래 사전적인 의미는 ‘성벽’, ‘요새’라는 뜻의 보통명사이다(모스크바가 아닌 지방 도시의 성벽 모양의 건축물들이 ‘끄레믈’이라고 불리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것이 현재는 수도 모스크바의 정치적 심장부로 상징되는 ‘고유명사’가 되어버렸다.

러시아인에게 있어서 끄레믈은 러시아의 심장부이자 역사를 대표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모스크바 중심부에서 약 26만 제곱미터의 넓은 구내에 들어선 건물들은 과거 ‘짜르’와 정교 대주교의 거처였다. 끄레믈은 세상의 끊임없는 변화 속에 있으면서도 러시아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본질적으로는 옛 그대로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사실 끄레믈은 극히 강렬하게 옛 러시아를 상징하는 것이었으므로 러시아 근대화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뾰뜨르 대제는 러시아를 근대-근세화 시키려고 결심했을 때 고대로부터 전하는 이 양파 모양의 돔이 솟은 구역을 단념하고 그곳으로부터 북서쪽 650km 지점에  새 수도인 쌍뜨 뻬쩨르부르그를 세워 새 출발을 하였던 것이다.


지금 남아있는 ‘끄레믈’은 1812년 나폴레옹 점거 때 소실된 이후 재건축한 것이다. 여러 궁전, 사원, 최고회의 건물, 병기고, 무기고, 대포의 황제, 종의 황제 등 다양한 볼거리들이 있다. 현재는 테러를 우려해 단체 관광객만 입장시킬 뿐 개인 관광객은 ‘끄레믈’ 내부로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여름시즌에는 이런 규제가 풀릴 것으로 예상된다.


끄레믈에 대한 간단한 역사적 사회적 배경에 대한 소개는 여기서 줄이고, 이번에는 끄레믈의 내부 설명을 해보도록 하겠다. 끄레믈 내에 위치한 여러 건축물들에 대한 소개가 주가 될 것이다.


뜨로이쯔끼 모스트’라고 불리우는 다리이다. 끄레믈로 입장할 때와 퇴장할 때 건너게 되는 출입구라고 할 수 있다.



끄레믈 내부에는 수많은 사원들이 있어 종교의 나라(러시아는 국교로 러시아 정교를 채택하고 있다)의 모습을 보여준다. 바로 위에 보는 사원이 ‘아르한겔스끼 사원(Архангельский собор - 1505-08 - Алевиз Новый)’이다. 이 사원은 군대의 수호자인 '미하일 아르한겔스끼'을 추도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다.




블라고베쉰스키 사원(Благовещенский собор - 1484-89 - Псковские мастера)이다. 이 성당은 천사 가브리엘이 성모 마리아에게 그리스도의 잉태를 고지한 '성수태고지(Annunciation)'의 의미를 담고 있는 곳으로써 제정러시아 시절 황제들의 가족 성당이었다.



이반대제의 종탑(Колокольня Ивана Великого - 1505-08 - Бон Фрязин)이라고 불리우는 건물이다. 이 건물은 이반 대제에 의해 1505~1508년 이탈리아의 건축가 ‘본 프랴진’이 하얀색 돌을 사용하여 세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어서 팔면체의 기다란 종루는 1532년~1543년 동안 지어졌고, 종루 꼭대기의 황금색 3층 돔과 꾸뽈(купол: 양파 모양의 지붕)은 ‘보리스 고두노프(1598~1605)’의 시대인 1600년에 완공되었다.


약 80미터 높이인 이반 대제의 종루는 건축 당시 모스크바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으며, 종루의 감시탑에서는 모스크바를 침입하는 외적들을 감시할 수 있었으며, 외적들의 침입 시에는 종을 울려 이를 알렸다고 전해진다.



종의 황제 (Царь-колокол - 1735 - Маторин И.Ф., Маторин М.И.)라고 불리우는 세계에서 가장 큰 종이다. 높이 6m에 200t의 무게를 가지고 있다. 1733-1735년 ‘이반 마트린’과 ‘미하일’ 부자가 만든 작품이다. 그러나 종의 주조 중에 화재가 났고, 누군가 종에 물을 부어 버리는 바람에 종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 미완성으로 끝났다. 세계 최대의 종이지만 아직까지 한번도 울려본 적이 없는 종이기도 하다.



대포의 황제(Царь-пушка - 1586 - Андрей Чохов)이다. 16세기말 ‘안드레이 초호프’에 의해 주조되었다. 구경이 890m이고 중량은 40t나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 대포 역시 종의 황제 처럼 한번도 발사된 일이 없다는 것이다.




우스?u스키 사원 (Успенский собор - 1475-79 - Аристотель Фьораванти)’이다. 성모승천 사원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사원은 러시아 제국의 국교사원으로써 과거 황제가 대관식을 올렸던 곳이다. 사원의 벽과 천장은 이콘의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고, 여기에 이콘화를 남긴 화가는 10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가장 유명한 것은 12세기 성 게오르기상과 13-14세기의 삼위일체상).




발쇼이 끄레믈룝스키 드바례쯔(Большой кремлевский дворец - 1838-50 - Тон К.А.)’라고 부르는 건물이다. 대 끄레믈 궁전이라고 불리운다.


모스크바 강에 면하고 있는 15∼17세기의 역대 황제의 처소였던 곳이다. 전장 125m, 방의 수는 700개, 총 2만㎡의 넓이를 자랑한다. 건물의 1층에는 집무실외에 역대 황제의 대리석, 호화로운 방들이 있고 2층에는 저 유명한 예식용 ‘게오르기 홀’이 있다.


이곳에는 19세기의 가구, 샹들리에, 양탄자, 악기, 그림, 조각 등이 다양하게 갖추어 져 있어 파리의 루브르 궁전 못지 않게 화려함을 갖고 있다. 그 후 1934년 개축 때에는 3,000명 수용의 소련 최고회의 간부회의장이 만들어졌었다. 주요한 몇 개의 홀에는 러시아 훈장의 이름이 붙어 있는데 에카테리나 훈장의 홀, 블라디미르 훈장의 홀 등이 그것이다. 그 중 가장 아름다운 홀이 ‘게오르기 홀’이다. 현재 일반인에게는 관람이 허용 되지 않고있다.




12사도 사원(Патриаршие палаты с церковью свв. двенадцати апостолов - 1652-56)’이다. 끄레믈 극장과 대회궁전 사이에 남쪽으로 은색의 돔 5개로 구성되어 있는 건물이다.12사도 사원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1681년부터였다.


1963년에는 17세기 응용미술, 생활박물관이 되고 보석, 가구, 손으로 쓴 출판물 등의 17세기의 응용미술 700점 이상이 전시되 어있다. 관람이 허용되는 몇 안되는 사원이다. 참고로...관람시간은 9:00에서 17:00까지이고 화요일은 휴관이다.



뜨로이쯔까야 탑 (Троицкая башня - 1495-99)이다. 끄레믈에서 나올때 통과하는 다리인 ‘뜨로이쯔끼 모스트’의 본 건물을 지칭한다. 끄레믈의 입구로써 볼로미츠카야 탑과 함께 관광객용의 출입구이다. 1495년 건축되었고 지하에 폭약고가 있었으나 16∼17세기에는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끄레믈의 탑 중에 가장 높은 높이로 80m에 달한다.



‘뜨로이쯔까야 탑’ 바로 앞에 위치한 ‘꾸따피야 탑(Кутафья башня - 1516)’이다. 저 둥근 탑 내부에 우리나라 지하철역 출입구와 같은 구조로 관광객들이 출입을 한다. 오른쪽에는 매표소가 위치하고 있다.




끄레믈 내부에 있는 무기고(Арсенал - 1702-36 - Чоглоков, Казаков и др. - классика)이다. 여기에는 16세기 경부터 무기나 갑옷을 제작하는 명장이 있고 후에 금은 접시나 장식품, 마구, 이콘, 궁전용 의장 등의 작업장도 있다. 그 후 전시물의 반 정도가 '쌍뜨 뻬뻬르부르그'로 이전한 뒤에는 무기나 전리품, 외국에서 선물 받은 물건의 보관 창고가 되었다.


소장품에는 에카테리나 2세의 마차 등 황제의 물건과 예까쩨리나 2세의 이관식 때에 사용되었던 398캐럿의 다이 아몬드 왕관 등이 있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에서 오후 5시까지이고 목요일은 휴관이다.


이상으로 부족하나마 끄레믈 내부를 돌아다녀보았다. 다음 회에는 붉은광장과 그 주변의 역사적 건축물들을 위주로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