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세계일보 인물 블로고스피어(080624)
[인물 블로고스피어]‘끄루또이’ 손요한
러시아에 푸∼욱 빠진 ‘쿨가이’
우리에게 러시아는 아직 미지의 세계다. 북미나 서유럽에 비해 일반인의 관심도가 떨어지는 곳이다 보니 러시아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쉽게 접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를 방문할 일이 있거나 여행 혹은 유학을 떠나는 이들에게 러시아 전문 블로거 손요한(35)씨가 운영하는 ‘끝없는 평원의 나라로의 여행’(http://russiainfo.co.kr)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다. 러시아 정보에 목말라 있는 사람들에게 ‘끄루또이’ 손요한씨는 샘물 같은 존재나 다름없다.
블로고스피어에서 러시아 전문가 ‘끄루또이’로 통하는 손요한씨. 끄루또이는 영어로 ‘쿨 가이(Cool guy)’쯤에 해당되는 단어로, 러시아 젊은이들 사이에 많이 쓰이는 신조어이다. 최근 러시아 출장에서 막 돌아온 손씨와 지난 9일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만나 러시아 이야기를 들어봤다. ―러시아는 요즘 어떤가.
“요즘 이맘때 러시아에 가면 아주 좋다. 이때부터 날씨가 풀리면서 여행하기 좋아진다. 러시아 여행의 황금기는 7∼8월인데 이때 러시아를 방문하면 아주 쾌청한 날씨에 러시아 관광을 만끽할 수 있다.”
―러시아는 늘 추운 나라라고만 생각했다.
“사람들이 러시아에 대해 흔히 가진 편견 중 하나가 바로 날씨다. 러시아에도 여름이 있다. 러시아의 겨울은 6개월에 불과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자연스럽게 러시아 날씨 얘기로 시작된 인터뷰는 끝날 때까지 러시아 얘기뿐이었다. 그는 우리나라 다음으로 러시아를 사랑한다고 한다.
―러시아의 매력은 무엇인가.
“러시아는 알면 알수록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나라이다. 벗기면 벗길수록 색다른 모습이 나타나니 계속 공부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 자체가 매력적이다. 러시아 길거리와 러시아 사람들, 러시아와 관련된 모든 것이 좋다.” 신혼여행도 러시아로 다녀왔을 정도다.
그의 블로그에는 러시아어 알파벳 읽는 법, 러시아에 편지 보내는 법, 러시아 휴대전화 시장 현황 등 주제도 다양하고 러시아를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둬야 할 ‘고급정보’가 많다. 그의 블로그는 온라인 속 ‘러시아 문화원’인 셈이다.
실제로 그의 블로그만큼 러시아인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공간도 드물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따끈따끈한 러시아 소식도 접할 수 있고 러시아인의 생활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게시물도 상당히 많다. 코믹한 게시물도 종종 눈에 띈다. 러시아의 지하철 안 모습을 찍어서 올려놓은 사진이 좋은 예다. 만취상태로 지하철 통로 바닥에 드러누워 잠에 빠진 청년들과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있는 승객들의 모습은 마치 ‘블랙 코미디’를 연상케 한다. 손씨는 러시아 지하철에서 이런 모습은 아주 흔한 장면이라고 귀띔했다.
그가 러시아 땅을 처음 밟은 것은 러시아 민족우호대학에서 어학연수를 한 2001년의 일이다.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한 그는 2002년까지 2년 동안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머물며 러시아 곳곳을 누볐다.
―사람들이 왜 러시아 전문가로 인식할까.
“스스로 러시아 전문가라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러시아 관련 블로그를 가장 오랫동안 꾸준히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러시아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분명히 어딘가에 나보다 러시아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다만 나는 러시아에 대한 거짓 정보를 전하지 않을 뿐이다.”
그는 부인했지만 그가 블로고스피어에서 ‘러시아 전문가’로 통할 수 있었던 데는 러시아어 전공자라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다.
―러시아어는 제2외국어 중에서도 어렵기로 소문난 언어라던데 왜 러시아어를 택했나.
“한반도 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연결될 것에 대비해 러시아어를 택했다. 그런데 아직까지 구체적인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철도가 완성되는 때 ‘대박’을 터뜨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웃음)
1990년대 후반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공중파를 통해 방영되면서 아주 잠깐이나마 러시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쏠린 때가 있었다. 그러나 관심을 지속할 만한 특별한 계기가 없었다. 그는 시간의 문제일 뿐 언젠가는 러시아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때가 올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
◇ 러시아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담긴 손요한씨의 블로그.
그는 러시아어 전공을 살려 졸업하자마자 러시아 문화원에서 일하며 해마다 여러 차례 러시아를 방문하는 행운을 누렸다. 지난 3월 퇴사 이후 최근 러시아 관련 사업을 벌이는 회사로 옮긴 뒤에도 러시아 출장은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 출장길에서 돌아올 때마다 책이나 잡지, 영화 DVD 등을 구해서 들어온다. 급할 때 필요한 자료를 공수할 수 있는 러시아 현지 인맥도 탄탄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업 상담을 받는 경우가 종종 생기곤 한다. “러시아에서 이런 사업이 성공할 만하겠느냐?”는 식의 사업 타당성 검토를 요청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가 블로그에 올린 러시아의 제품을 보고 국내에서 상품화하겠다며 방법을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실제로 제안을 많이 받나.
“사업 아이템을 상담하는 사람도 많고, 같이 일해보자는 사람도 많다. 지난해 러시아에서 들여온 난방용 제품을 블로그에 올렸더니 그 제품의 샘플을 구하고 싶다며 수입 여부를 문의하는 메일을 50여통이나 받았다.”
―러시아 여행서적을 쓸 계획은 없나.
“몇 번 제의가 들어오긴 했지만 이미 시중에 나와 있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해보고 싶다. 러시아 요리책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있다.”
―그래도 현재 유통되는 러시아 정보는 불충분한 것 같은데.
“러시아 여행정보를 예로 들면 뒤떨어진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지난해 지역번호가 개편되면서 국번이 전부 바뀌었는데 이런 내용이 반영된 책자를 구하긴 쉽지 않은 것 같다.”
―러시아에 대한 최신 정보는 어떻게 구하나.
“거의 매일 러시아의 각종 주요 포털 사이트를 쭉 훑어보고 뉴스검색을 한다. 러시아 웹 공간에서 최신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 읽고, 읽고, 또 읽는다. 이젠 러시아에 대해 필요한 정보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웬만큼 알 수 있을 정도는 된다.”
당구가 취미인 그는 최근 당구를 주제로 한 블로그(http://billiard.textcube.com/)도 오픈했다. 일반인이 당구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당구의 대중화를 시도하는 차원에서 만든 블로그이다.
―앞으로 더 하고 싶은 일은.
“공부나 일 목적이 아니라 특별한 목적 없이 러시아를 여행해보고 싶다. 러시아 여행을 여러 번 다니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보지 못한 곳이 훨씬 많다. 러시아는 지금 아주 빠르게 변하고 있다. 러시아의 변화를 계속 지켜볼 것이다.”
기획취재팀=김용출·김태훈·김보은·백소용 기자 kimgij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