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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분 뒤, 7시간 뒤 그리고 7일 뒤

하루하루 살아가며

by 끄루또이' 2009. 5. 27.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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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분 뒤]

잠시 아득한 느낌이 있었지만 그는 다시 의식이라는 것을 되찾았다. 하지만 다시 생소한 느낌이 전신을 지배하는 것을 느꼈다. 눈이 밝아졌다고 해야할지 몸이 부쩍 가벼워졌다는 느낌이었다. 이러한 소소한 감상을 즐기기도 전에 누군가가 자신에게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산비탈을 평지처럼 뛰어오고 있었다. 안면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몇 해 동안 자신과 동거동락하던 사람으로써 자신의 신변을 지켜주던 사람이었고 부모가 준 이름보다는 경호원이란 명칭이 익숙한 사람이었다.

숨을 헐떡이며 도착한 경호원은 안색이 새하얗게 되어 있었으며 땀을 비오듯이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보였지만 도저히 웃을 수는 없었다. 경호원은 자신을 못본듯 곧장 지나쳐 뒤편으로 뛰어갔다. 모르고 있었지만 자신의 바로 뒤에 어떤 인물이 피를 흘린채 쓰러져 있었다. 그는 경호원이 이렇게 사색이 된 것이 저 인물 때문이라는 것을 이내 알아차렸다. 경호원은 잠시 그 인물의 맥을 짚어보더니 곧장 들쳐업고 산 밑 마을로 뛰어내려갔다. 일련의 과정은 그야말로 번개처럼 빠르게 진행되었지만 경호원은 매우 당황하고 있었다. 아니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경호원의 등에 업혀가는 인물은 매우 낮이 익었다.

가까이 다가가려 하자 그는 마을 밑으로 뛰어 내려가던 그 경호원에게 이내 다가갈 수 있었다. 한참 젊었던 시절에도 이보다 빠르진 않았지만 그는 그런것에는 그리 신경쓰지 않았다. 경호원의 등에 업혀있던 인물을 확인하자 그는 잠시 놀랐다. 표준체형에 곱슬한 머리, 이마에는 다소 굵은 주름이 잡혀있는 얼굴. 피에 젖은 모습이 다소 낮설어 보였지만 그 인물은 바로 그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내 자초지종을 알 수 있었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그는 조금전 언덕 위에서 뛰어 내렸었다. 미리 준비된 행동이었고 그 당시에는 회한이 몸을 감싸고 있었다. 담배 한 대가 절실했지만 현실은 그것마저 허락하지 않았었다. 언덕 위에서 땅 까지는 불과 8미터 밖에 안되는 거리였고 떨어지는 순간은 세상시간으로 불과 몇 초 밖에 되지 않는 찰라였지만 그 찰라 동안 그는 수만가지 상념에 젖어 있었다.

'허허...'

그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랬다. 그제서야 그는 모든것을 알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이미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닌 것이었다. 어느정도 유무형적으로 등을 떠밀린 것도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자신의 의지로 세상을 버렸었다. 다만 그것이 끝일 줄 알았지만 끝이 아니었다는 것이 다소 의외긴 했다. 그는 대외적으로는 종교인이었지만 내세의 삶을 그닥 믿지는 않았다. 그것을 절실하게 믿었다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결정을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를 괴롭힌 주변의 상황은 어쨓거나 자신과 무관한 것이 아니었고 결론적으로 그만이 책임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하늘을 한번 쳐다보았다. 어느덧 동편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산책하기에 참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다.


[7시간 뒤]

7시간 뒤 그에 대한 소식을 전 국민이 알게 되었다. 쓴 웃음이 지어졌지만 형상화 되지는 않았다. 육신을 버린뒤 그는 마음만 먹으면 나라 전체를 한 눈에 쳐다볼 수 있게 되었다. 육안으로 보았을때 보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다소 넓어졌다고 해야할까. 단편적이지 않고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능역이 생긴 것이다.

그가 세상을 버린 뒤 수 시간이 흐르자 나라 전체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보였다. 언론들은 앞다투어 자신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고 전 국민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지 간에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집권당을 탓하는 이들, 현 대통령을 탓하는 이들, 검찰을 탓하는 이들, 언론을 탓하는 이들, 자신을 경솔하다 탓하는 인사들, 종교인이 그럴 수 있느냐며 탓하는 이들, 자신의 가족을 탓하는 이들, 그의 측근을 탓하는 이들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거론되고 있었다.

더불어 전국에서 많은 이들이 자신의 집이 있는 마을로 몰려들었다. 언론사도 있었고 자신을 사랑해 주던 이들도 있었으며, 자신의 죽음을 이용하려는 이들도 있었다. 어느정도 반향은 있으리라 여겼지만 이러한 번잡한 현상을 바라지는 않았다. 어떤 이들은 눈물을 흘려주었으며 어떤이들은 자신들만의 가치에 따라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살던 마을 앞에 현수막이 하나 걸렸다. 자신의 유언이 담긴 현수막이었다. 자신이 써놓은 문구를 보며 그는 그는 짧은 상념에 젖었다. 이 것을 적었을 당시에는 세상에 그닥 미련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미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구나. 세상에 얽매이지 않았다면 이런것도 써놓을 필요는 없었지 않은가? 남은 자들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지만 이 또한 내 의지와는 다르게 해석될것이 아닌가'

해가 지자 마을 입구에서 자신의 지지자들이 문상오던 이들 중 특정 인물들과 실랑이가 벌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자신과 생전에 그닥 관계가 원할하지 않은 이들이거나 단체들이었다. 자신을 어떻게든 깍아내리려하던 이들도 있었고 정적들도 있었다. 그들이 이곳까지 찾은것이 순수하게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님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과 자신의 지지자들 간에 반목이 오가는 모습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지인들이 그들을 적대시 하는것이 이해가 되었다. 자신역시 그들을 마주보는 것이 달갑지는 않았지만 어쨓거나 손님을 내치면 안된다 생각했다. 그는 모진 인물이 못되었다. 문뜩 살아생전이나 죽은 지금이나 자신에게 따라붙는 별명이 떠올랐다.

'이렇게 무른 생각을 하니 나보고 사람들이 바보라고 부르지 않겠는가...'

그는 아무도 볼 수 없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장례는 축제여야만 했다. 먼저 간 이의 생전 이야기를 하며 먹고 마시고 즐겁게 떠드는 것이어야 했다. 하지만 자신의 장례는 그렇제 못하다는 것이 그를 슬프게 했다. 그는 이러한 얽혀진 매듭이 풀리길 바랬다.

[그리고 7일 뒤]

7일 동안의 축제는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에게는 다소 긴 장례라고 여겨졌지만 뜻깊은 기간이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었고 두 손 모아 빌어주었다. 자신에게 쏠리는 관심을 분산시키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국민들은 자신을 위해 번거로움을 감내해 주었다. 고마웠고 감사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며 그는 국민의 의지를 보여준 촛불이 떠올랐다. 더불어 6년 전 승리의 날 지인들과 했던 악수가 떠올랐다. 그는 잠시 짜릿한 희열을 느꼈다. 이 나라의 국민은 여전히 현명하고 정의로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그것을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미래에도 변함이 없을것이었다.

이제 그의 육신이 화장될 시간이었다. 이후에도 자신이 의식을 가지고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 아닐거라 생각했다. 이젠 반푼어치 정도 남아있던 미련마져 없어졌다. 그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물론 형상화 된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두손을 입에 모아 크게 소리쳤다.

"열심히 잘들 지내시고요, 건강들 하십시오, 좋은 날이 올 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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