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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블로진에 실린 글(빅토르 최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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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루또이' 2005. 11. 3.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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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 - 끄루또이
블로그 - http://kurutoi.onblog.com

빅토르 최 - 우리 시대의 전설

15년 전, 자동차 사고로 전설적인 인물인 빅토르 최(빅떠르 로베르또비치 쪼이<Виктор Робертович Цой (1962~1990)>가 사망했다. 그는 록 가수였으며, 그룹 ‘키노’의 리더인 동시에 1000만 관객 이상을 동원한 영화 <이글라>의 주연배우로 출연했던 만능 엔터테이너였다.

그의 삶에 마지막 해 빅토르는 러시아의 라트비아에 있는 자신의 다차(별장-편집자주)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고 있었다. 1990년 8월 15일 레스느이 호수에서 새벽 6시까지 낚시를 하던 빅토르는 자신의 승용차 <마스크비치(모스크바시민이라는 뜻-편집자주)-2141>를 130km이상의 속도로 몰고 숙소로 출발했다.

12시 28분, 빅토르가 몰던 <마스크비치-2141>가 슬로까따우시 도로 35km지점을 통과하고 있을 때 맞은편에서는 <이카루스-280>이라 불리는 대형 버스가 60~70km의 속도로 접근하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빅토르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곧이어 두 차량은 정면충돌했다. 빅토르의 <마스크비치>는 충돌 후 18미터나 밀려나 처참하게 찌그러져버렸다 . 빅토르는 핸들에 가슴을 찍힌 채,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그러나 빅토르의 <마스크비치>와 충돌한 <이카루스>의 버스운전기사는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빅토르가 사망한지 4일 뒤인 1990년 8월 19일 오전, 쌍뜨 뻬쩨르부르그(당시 레닌그라드-편집자주)의 보거슬라브스끼 묘지(Богословский кладбище)에서 그의 장례식이 거행됐다. 바로 그 다음날부터 뻬쩨르부르그에서는 자살률이 30%이상 늘었다.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은 대부분 스무 살 아래의 젊은이들이었으며, 이들 중 5명은 빅토르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자살한 것으로 밝혀졌다.


빅토르 최는 단순히 인기만 몰고 다니는 가수는 아니었다. 그와 그의 그룹 ‘키노’는 그 시대를 풍미한 전설적 존재였으며, 80년대 후반 러시아 젊은이를 대표하는 상징과 같았다. 그의 삶 중 마지막 두 해는 그에게 성공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는 당시 러시아의 모든 젊은이들에게 절대적인 지지와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는 수많은 러시아 순회공연과 영화 출연을 통해 명예, 금전적인 성공 그리고 대중의 사랑까지 얻게 되었다. 심지어 당시에는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 순회공연(1990년 가을)까지 진행했었다.

이미 그가 사망한지 1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의 음악은 살아있다. 빅토르가 사망한 후 그룹 ‘키노’는 생전 빅토르의 목소리를 담은 새로운 앨범을 발표했다. 행운이었다. 빅토르의 차 트렁크에서 그의 목소리가 담긴 레코더가 발견된 것이었다.




현재 러시아에서 그룹 ‘키노’의 곡들은 다시 리메이크 되고 있으며, 다양하게 재해석되고 있다. 게다가 리메이크 된 곡들은 ‘키노’의 전성기에 누린 것처럼 현재 러시아 인기 곡 차트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도 러시아의 라디오에서는 빅토르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다.

그의 노래 <혈액형(그루빠 끄로비 Группа Крови)>은 러시아 내에서 20세기 최고의 곡으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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