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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살아가며

퇴근길에

하늘색 원피스를 곱게 차려입은 여성이 옆자리에 앉는다. 20대로 보이는 이 분은 앉자마자 전화기를 꺼내고 동료로 생각되는 사람과 통화를 시작했다. 또렷한 발음으로 통화를 해서인지 본의 아니게 이분의 전화내역을 30분가까이 듣게 되었다. 이 여성분은 초등학교 선생님인듯했다. 아마도 상대편 동료분도 선생님인듯 했고.

이분이 사용한 단어로 통화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교감 재수없어. 애낳고 오자마자 나한테 홈페이지를 맡기는게 어딨어? 맡길사람한테 맡겨야지. 관리가 될리 없잖아. 나 관리 안할거야.

2.
우리반 아무개 알지? 걔가 오늘 ....(중략)....난 걔 말을 믿을수가 없더라구. 너도 그렇지? 걔는 어쩌면 애가 그렇니?

3.
애들 운동장에서 지들끼리 놀라고 하고 교실에 와서 잔무를 좀 보는데 그사이에 감독관이 왔다갔나보더라구. 감독관이 교감한테 뭐라고 했나보지? 교감이 지랄지랄하더라. 아니 애들이랑 하루종일 있다가 잔무를 언제보라는거야? 나보고 야근을 하라는 거야?

나보다 세 정거장 전에 내린 이 분은 지하철을 내려서도 전화기를 통해 상대방과 그들끼리 통하는 교감을 나누고 있었다. 어여쁜 얼굴은 찌푸러져 있었으며, 시니컬한 미소가 입꼬리에 매달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