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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러시아에서

특이한 사과(赦過) 광고

러시아 거리, 특히 모스크바 거리를 보노라면 도시 전체가 광고판 같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도시의 거의 모든 도로 중앙에는 광고판이 줄이어 늘어져있고 건물들에도 광고 현수막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을 보게 된다. 거리에는 전단지들이 난무하고 건물이나 아파트 1층에 있는 게시판 마다 잡다한 광고들이 빈틈없이 게시되어 있다. 한때 러시아어로 된 광고 전단지 마저도 신선하게 다가오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젠 우리나라에서 전단지를 쳐다볼때 느끼는 감정이랑 별반 차이가 없게 되었다.

물론 주의깊게 쳐다보는 광고판도 있기는 하다. 국내 기업의 광고판이나 영화, 콘서트 광고 같은 것이 그렇다. 간혹 특색있는 광고들은 하루를 즐겁게 만들어주는 청량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아래 사진에 있는 광고가 그런 종류이다.



위의 광고판에는 제품에 대한 아무것도 설명이 되어 있지 않다. 단지 다음과 같은 말만이 러시아어로 쓰여져 있다.

'야 무닥 (나는 얼간이야, Я мудак.)'
'오친 찌뱌 류블류! (당신을 너무 사랑해!, Очень тебя люблю!)'


'무닥(мудак)' 이라는 러시아어 표현은 슬랭이라고 보면 되겠다. 영어로 하자면 'asshole'쯤 되는 의미이다. 물론 체감적인 강도는 러시아어가 조금더 세다고 할 수 있겠다. 직역하자면 조금 다른 의미겠지만 의역하면 '얼간이'나 '바보', '멍청이' 쯤이 적당할 듯하다.

저 광고에 등장하는 남자는 자신의 여자친구 혹은 아내에게 뭔가 잘못해서 저런 광고를 했을까? '선영아 사랑해'류의 반전을 기대했다면 실망이겠지만 맞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저 광고를 게재했다고 한다.  저 광고판의 남성은 부인에게 뭔가를 크게 잘못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부인은 그를 떠나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저런 광고를 통해 부인에게 사과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돌아오라는 의미도 있다고 하겠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저런 대형 광고판에 광고를 할 여력이 있다면 부인에게 그럴듯한 선물을 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되지만 저 남성은 저 방법이 최선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사랑싸움의 화해 메세지를 보내기에 옥외 광고의 단가는 상당히 비싸겠지만 저 남성은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다. 더불어 러시아의 보편적인 사과의 상징인 꽃을 배경으로 깔았다.  

광고주인 남성 자신의 얼굴까지 공개해가며 만들어진 저 옥외광고판은 상당히 우스꽝스러워 보이지만 저렇게라도 해야하는 저 남성의 절박함이 느껴져 다소 안됬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광고 게재 이후 떠나간 부인이 돌아왔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역시 동서양 공통으로 통용되는 만고불변의 진리.

'있을 때 잘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