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도자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블도자는 낮선 시대의 청년이었다. 어느날 평소에 막역하던 친구의 목적없는 부름에 집을 나섰다. 하늘은 화창했다. 길을 걷고 있노라니 동네 컴ⓣing 전파사 옆에서 라디오 퀴즈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어린아이가 전파사에서 밖으로 빼놓은 스피커에 귀를 기울이며, 근처 신문사에서 돌린 행사용 떡을 먹고 있었다(이 신문사 편집장은 일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날 라디오 퀴즈의 정답은 괴물인듯 했다. 건널목으로 접어드는 길에 평소에 자신을 해커라고 부르짓고 다니는 PC방 총각이 담장 위에서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던 이쁘장한 아기 고양이에게 청혼을 하고 있었다. 재미있는것은 아기 고양이가 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세상은 역시 묘했다. 더불어 이런일은 꿈이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조금 일찍 약속장소에 나왔더니 만나기로 했던 친구는 아직 오지않은듯 했다. 주변에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정체모를 북미산나방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FTA가 곤충계부터 시작했는가? 라는 웃기지도 않은 생각을 하며 벤치에 앉아있으려니 동네 처자들이 개울가에서 77장의 팬티를 빨래하면서 주전부리로 제스터라는 과자와 라띠라는 음료수를 먹고 있었다. 간혹 제스터라는 과자에서는 정체모를 털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 기억났다. 친구가 조금 늦게 나타났다. 이녀석 첫마디가 "먄~!" 이라고 한다. 이녀석은 채팅어를 평소에도 사용한다. 평소와는 틀리게 미안하다고 주먹밥을 사왔다. 주먹밥은 양도 적었지만 간도 덜 되어 있었다. "싱겁기도 할 뿐더러, 너라면 이거 먹고 양에 차니?"라고 핀잔을 주니 "그럼 소금이라도 한주먹 주리?"라고 되려 성낸다. 그리 특별한 목적으로 만난 사이가 아닌지라 그냥 쓸데없는 농담을 주고 받는다. "너 어제 TV에 나온 호리봤니?" "누구 이호리?" "아니 이번에 새로 나온 가순데 두호리라고..." "난 연예인 싫다. 난 9시뉴스의 홍기자 팬이야" 대충 이런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옛날에 이 녀석이 구구단을 못 외웠던 기억이 나서 갑작스레 물어본다 "2 x 3 ?" 녀석이 당황한다. " 이삼...구.. 글치? " "당그니지! 이젠 잘 맞추는걸?" 제법 이제는 구구단이 익숙한 모양이다. 친구와 헤어지고 거리를 걷고 있노라니 유명한 약국인 종근당이 보인다. 길 건너편에는 다단계 피라미드 회사로 불리우는 레진사(社)가 보인다. 그옆에는 중국집 청와대와 통닭집 파이어준이 있다. 몇 몇 성인 오락실이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보인다. 게중에 바디이야기와 쌍벽을 이루던 함장이라는 이름의 성인오락실은 얼마 전 불법 도박장으로 걸렸다고 하더니 아직도 운영 중인 모양이다. 이 오락실에서 경품으로 애로팬더를 들고 다니는 사람을 자주보곤 한다. 집 옆에 위치한 댄스 교습소 김중태 문화원은 이 동네에서 유명한 노인들의 여가생활공간이다. 내가 사는 집 뒤로는 너른호수도 있어 동네사람들은 그곳에서 멱을 감곤한다. 더불어 거북이가 많기로도 유명하다. 호숫가에는 구슬프게 바이올린을 켜는 집시가 한명 보인다. 동네사람들은 진짜가 아닌 가짜집시라고들 했다. 하지만 제법 이지적으로 보여서 느낌이 좋은 사람이다. 집에 들어오니 옆집 철수네집 가족들이 놀러와 있었다. 그집 아이들은 자기집인양 TV를 점령하고 있었다. TV에서는 백금기사와 아키라라는 일본 에니메이션과 80년대 육백만불의 사나이와 쌍벽을 이루던 써머즈와 같은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모친께서는 철수네 아이들이랑 놀아주라고 하지만 저런 어린애들과 무슨 재미로 놀아준단 말인가. 나도 자부심을 가진 청년이 아니던가. 그냥 내방으로 들어와서 오즈의 마법사를 꺼내들었다. 어린애들과 놀아주느니 도로시의 모험에 동참하는 것이 나으리라. 더불어 베스트셀러인 양을 쫓는 모험도 봐야한다. 책상 위 작은 선인장은 물을 안줘서인지 메말라가고 있었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물을 좀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창밖에 소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블도자는 꿈에서 깨어났다. 복잡한 꿈인듯 했지만, 별다른 내용도, 기억할 필요도 없는 내용의 연속이었다.
"역시 개꿈인게지..."
꿈이란 것은 현실 발로의 반대로 해석되기도 하고, 참았던 욕망의 무의식적 분출로도 여겨지지만 블도자에겐 단지 피곤함의 산물이었다. 블도자는 머릿속의 수많은 링크를 지우듯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때는 바야흐로 한 여름이었고, 장마철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