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까쩨린부르그의 전경
러시아인들은 수도 모스크바와 뻬쩨르부르그(페테르부르그)는 러시아풍의 도시는 아니라고 말한다. 반면에 예까쩨린부르그(Екатеринбург)는 진정한 러시아풍의 도시라고 말한다. 모스크바와 뻬쩨르부르그가 국제화에 맞춰 해외풍 건물들과 계획된 도시라면 예까쩨린부르그는 고대 러시아 시절부터 러시아풍의 건물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예까쩨린부르그는 '예까쩨리나의 도시'라는 의미이다. 러시아 짜르 뾰뜨르의 황후였던 예까쩨리나의 이름을 본따 도시이름이 지어졌다. 소비에트 시절에는 적군승리의 일등공신이자 볼셰비키의 리더였던 스베르들로프(1919년 사망)의 이름을 따서 '스볘르들롭스크'로 도시명이 변경되었으나 민주주의가 들어선 이후 다시 옛이름을 되찾았다. 이 도시는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와 그의 가족이 1918년에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한 곳으로도 알려진 도시이다. 예까쩨린부르그는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자 소비에트 시절부터 현재까지 가장 거대한 금속, 광석 생산 공장들이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예까쩨린부르그를 사진과 함께 둘러보자.
청년 공산당원들의 기념 조형물과 러시아의 마지막황제 니콜라이 2세 시절 지어졌으며, 볼셰비키들에 의해 최후를 맞이한 것으로 알려진 정교 성당이 같은 장소에 위치해있다.
예수승천 성당. 19세기에 지어졌다.
성당의 메인 탑을 오를때의 계단의 모습.
얼어붙은 강의 모습. 그위를 어느 보행자가 걸어가고 있다. 오른쪽에는 날씨가 따뜻할때는 도강(?)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세워져 있다.
그래피티(낙서)를 한 벽의 모습. 섭씨 -20도가 넘는 날씨여서 그런지 고드름이 매달려 있다.
라스토구예프의 집. 라스토구예프는 우랄지역 역대 최고의 부자이자 상인이다. 이 건물을 통해서 웅장한 19세기의 러시아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다.
라스토구예프의 집 내부에 있는 구 소련시절의 소년(녀)단인 피오니르들을 교육하던 강당. 소비에트 시절은 지나갔지만 아직까지도 이 강당은 어린아이들에게 문화를 가르치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상단에 붙어있는 현수막의 문구를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 유년시절의 행복을 위해- 고맙습니다 조국이여!"
예까쩨린부르그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댐의 모습. 1924년에 댐이 지어졌다는 문구가 동판에 적혀있다.
저 멀리 미완성인채 세워져있는 텔레비젼 송신탑이 보인다. 저 탑은 모스크바의 오스탄키노 타워보다 높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TV 송신탑을 만든다는 취지에서 건축되기 시작했으나 재정적인 문제가 발생해 아직까지도 완성이 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