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그리 사교적이지 못한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밀리다 못해 떠밀려(?)서 학생회 활동을 몇 해 한적이 있었습니다. ( 거절 못하는 혈액형(A형) 인간의 전형적인 성격을 밤새 탓하며.... )
매년 겨울에 수능시험이 있은 후 수험생들이 (내지는 어머니 아버지들이, 혹은 일가친척 중 누군가가 )학교로 입학원서를 들고 서성일 때, 수험 상담을 해준다는 거창한 명목으로 깨끗이 닦은 책상에 커피나 차 종류를 잔뜩 쌓아놓고 앉아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다른 학과에 비해서 그리 인지도가 있는 학과 (러시아어과) 가 아니었던터라 뭔가 시각적인 화려함이 필요하다 여겨져, 그럴듯한 원본 러시아어 참고서 몇 권을 과시형으로 꺼내놓고 (전공자들이 봤을 땐 그야말로 기초 러시아어 교본을 말입니다 ^^ ) 뭔가 찾는 듯이 두리번 거리는 분들에게 따듯한 음료를 미끼 삼아 상담을 강요(?)하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상담내용은 러시아어과의 미래지향적(?)인 커리큘럼과 기타 긍정적인 면을 강조한 것이었지요.
대부분 상담을 받는 분들은 수험생들 보다는 수험생들의 어머니 아버님들이 보다 많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 아버님들의 질문은 공교롭게도 거의 다 비슷한 표현이었고 똑같은 단어로 이루어졌던 걸로 기억합니다.
" 소련말 배워서 어디다 써먹어요? "
당시 '소비에트 공화국', 소위 '소련'이라고 불리우던 러시아가 공산주의 체제를 포기하고 (아직도 러시아에는 공산당이 엄연히 존재합니다만... )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민주주의를 표방하며 국가명을 러시아로 환원시킨지 거진 9년이란 세월이 흐른 당시에도 여전히 우리 어머니 아버님들에게 ‘러시아’는 ‘소련’이란 이름으로 인식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긴 제가 대학생활을 2년이나 했을 때 까지도 저희 아버지, 어머님도 곧잘 '소련말' 이란 표현을 쓰시곤 했으니까요 ... 전쟁을 겪으셨던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는 그 쪽이 더 친숙하셨을 겁니다. 지금도 소련이라고 러시아를 칭하시는 분들을 자주 뵙는걸로 봐서는 여전히 인식변화가 더디다는 생각입니다. 러시아가 우리나라에서는 인지도가 높은 나라는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려는 것이 그만 서론이 길어지게 되었습니다. ^^;;
러시아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마피아, 볼쇼이 발레단, 줄 서는 나라, 나이트클럽 무희들 ..... -
주변 사람들에게 설문을 한 결과 위에 열거한 것들이 ‘러시아’ 하면 떠오른다고 합니다. 신문 사회면에서 총기 사건이니, 문화궁전 인질 사건, 폭탄테러 사건, 치친야(체첸) 전쟁과 같은 원초적인(?) 사건들에 대한 기사가 풍성하게(?) 소개되고 있으니 거창한 것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어찌보면 이정도가 우리나라에 인식 되어진 러시아라는 나라의 이미지인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제2외국어가 보편화 된 현재 (7차 교육과정이 시행될 때에는 중학교까지 제2외국어가 내려간다고 합니다.) 제3세계 언어가 아닌 독일어, 불어, 일본어, 중국어등등은 알아듣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굳이 위성 안테나를 설치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영어권 방송이나 일본의 국영방송, 중국의 ccc 방송등을 시청하고 청취하는데 어려움 또한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세계 제 2위의 군사강대국이자 G7이란 개념을 G8으로 바꿔놓은 러시아의 언어는 거의 암호수준의 언어로 대접 받고 있습니다. 물론 기타 아랍권이라던가 동남아 언어도 만만치 않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만, 딱히 러시아어의 발음이나 어감을 알아보시는 분들이 참으로 적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겁니다.
러시아어 하면 어떤 글자 뒤에 ' -스키' 가 붙어서 ' 무슨 무슨 스키 ' 식으로 농담에나 사용되어 온게 아직도 크게 변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얼마 전에 우스꽝스런 러시아어가 웹상에서 퍼진적이 있었지요? (‘케X 키야 !!! - 안녕하세요 !!!’ 로 시작되는... )
그래도 우리 문학 작품에서 러시아어가 몇 단어 사용된걸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고등학교때 배우셨을 심훈님의 상록수에 등장하는 표현인 ' 브 나로드 ( В народ )운동 - 민중 속으로-' 이라던지 전광용님의 ' 꺼삐딴 리 ( Капитан Ли ) - 캡틴 리-'등이 러시아어라는 건 아실 분들은 아실겁니다. ^^
하긴 수없이 많은 나라의 언어들이 소설이나 여러 분야에서 사용되었겠지만 러시아어전공자인 제 입장에서 보면 이정도로도 로또 복권에 당첨된 것 이상의 짜릿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내가 타투를 좋아하는 이유
학창 시절 수없이 많은 밤을 술과 함께 지새면서 말도 안 되는 토론을 하며 보냈었습니다. 뭐 대부분 학생들이 겪는 과정(?) 중에 하나겠지만 말입니다. 그때 제 머리 속에는 어떻게 하면 러시아어가 인기 있는(?) 언어로서 대접 받느냐 였습니다. 당시 저의 취중 주장은 무척 단순한 거였습니다.
" 우리 나라 하이틴들이 좋아할만한 대중문화 코드가 하나라도 있으면 러시아는 우리 나라에서 뜰(?)거야!!! "
이미 심수봉님이 러시아 국민 가수인 ' 알라 뿌가쵸바 '의 곡 '백만송이 장미'를 널리 알리셨고, 최성수님이 ' 아차로바나 '를 구슬프게 불러주셨으며, 모래시계의 주제가로도 쓰였던 ‘쥬라블리(백학)’ 윤도현 밴드는 빅토르 최의 “혈액형”을 멋지게 불러줬지만, 대중문화의 코드로는 2% 부족한게 사실이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우리나라에서도 러시아의 한 여성 듀오가 은근한 인기를 끌고 있어서 '드디어(!) 때가 온것인가? '라는 희망을 주는 계기가 얼마 전에 있었습니다.
소위 레즈비언 듀오로도 불리우는 '타투 (ТАТУ (tatu, t.A.T.u.)' 가 바로 그들입니다. 어떤 신문에서는 영국 출신 여성 듀오 라고 처음에 소개하기도 했지만.... 분명히 러시아 출신 소녀들이고, 러시아에서 활동을 주로 하고 있으며, 영어앨범을 내서, 영국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한 그룹입니다.
영어 앨범은 우리나라에서 이미 출시가 되었습니다만, 원어 앨범을 구해 들으려고 하는 중고생들이 의외로 많더군요 ( 개인적으로 러시아 관련 쇼핑몰과 관련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느끼는 아주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 심지어는 얼마 전에 학교 축제에 갔을 때 제가 학교 다닐 때 담당 교수님의 자제 분도 심취해 있다고 하시더군요.
물론, 이 듀오의 몽환적인 멜로디와 목소리는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대단한 음악성과 가창력이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러시아에서 방영되는 그녀들의 뮤직비디오는 (모자이크가 들어갈 정도로) 선정적이며, 가사도 그리 건전한 것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게다가 공개적으로 자신들을 레즈비언이라고 떳떳하게 이야기하는 그녀들은 기성사회의 이단아 같은 이미지 일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건, 한때 유행했던 말처럼 우리의 하이틴들과 그녀들의 ' 코드 ' 가 맞는다는 것입니다. 기성 사회인 어른들을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당신들 때문에 미쳐버리겠어!!!" 라고 소리지르듯이 울부짖는 그녀들의 이미지는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에게 크게 어필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문화 특히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은 그 나라에 대한 관심으로, 더 나아가 그 나라 언어로의 관심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그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단지 제 개인적인 관점에서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PS. 그룹 타투(원어식 발음으로는 ‘따뚜(ТАТУ)’)가 지난 6월 5일 그룹 명을 바꿨습니다. 새로운 그룹 명은 ‘테마(t.E.m.A)’ 라고 합니다. 더불어 기존의 이미지 (교복을 입은 소녀와 레즈비언 이미지 )의 변화도 고려 중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