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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살아가며

백구(1974)

일요일 아침, 방문을 차고 들어온 아들녀석의 성화에 눈을 떴다. 놀잔다.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원치 않았지만 평일보다 일찍 일어났다. 괘씸한 아들녀석과 업어치고 메치며 씨름을 벌이는 중에 녀석이 입고 있는 순백색 옷과 꼬물거리는 행태가 강아지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병술년에 태어났지.

양희은의 명곡 중에 '백구(1974)'라는 노래가 있다. 어찌보면 심파조 가사에 그닥 특색없는 멜로디의 곡이다. 하지만 양희은의 고운음색은 그 자체가 오케스트라였고, 어린시절 동경의 대상이었던 김민기 특유의 평범함(하지만 평범하지 않은)은 가슴속 어딘가를 건드렸다.

그러고보니... 이 노래를 처음 들었던 때 나는 훌쩍거리고 있었더랬다.



백구

내가 아주 어릴 때였나 우리집에 살던 백구
해마다 봄 가을이면 귀여운 강아지를 낳았지
어느 해에 가을엔가 강아지를 낳다가
가엾은 우리 백구는 앓아 누워 버렸지
나하고 아빠 둘이 백구를 품에 안고
학교 앞에 동물병원에 조심스레 찾아갔었지
무서운 가죽 끈에 입을 꽁꽁 묶인 채
멍하니 나만 빤히 쳐다봐 울음이 터질 것 같았지
하얀 옷의 의사 선생님 큰 주사 놓으시는데
가엾은 우리 백구는 너무 너무 아팠었나봐
주사를 채 다 맞기 전 문 밖으로 달아나
어디 가는 거니 백구는 가는 길도 모르잖아
긴 다리에 새하얀 백구 음음음음음 음음음음

학교 문을 지켜 주시는 할아버지한테 달려가
우리 백구 못 봤느냐고 다급하게 물어 봤더니
웬 하얀 개가 와서 쓰다듬어 달라길래
머리털을 쓸어 줬더니 저리로 가더구나
토끼장이 있는 뒤뜰에 아무 것도 뵈지 않았고
운동장에 노는 아이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줄넘기를 하는 아이 팔방 하는 아이들아
우리 백구 어디 있는지 알면 가르쳐 주렴아
학교 문을 나서려는데 어느 아주머니 한 분이
내 앞을 지나가면서 혼잣말로 하시는 말씀이
웬 하얀 개 한 마리 길을 건너가려다
커다란 차에 치여서 그만 음음음음음

긴 다리에 새하얀 백구 음음음음음 음음음음

백구를 앉고 돌아와 뒷동산을 헤매이다가
빨갛게 피인 맨드라미 꽃 그 곁에 묻어 주었지
그날 밤엔 꿈을 꿨어 눈이 내리는 꿈을
철 이른 흰눈이 뒷산에 소복소복 쌓이는 꿈을
긴 다리에 새 하얀 백구 음음음음음 음음음음
내가 아주 어릴 때에 같이 살던 백구는
나만 보면 괜시리 으르렁 하고 심술을 부렸지
라라라라 라라라라라 음음음음음 음음음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