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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살아가며

2006년 8월 16일 14시 31분

지금으로부터 29년 전 국민학교(초등학교) 4학년 때, 하늘에 절실하게 감사 기도를 드린적이 있다. 감사의 이유는 아이를 낳지 않는 남자아이로 태어나게 해주셔서이다. 당시 무엇을 본것인지, 혹은 들은것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파트 4층 계단에서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했더랬다. 당시 아이를 낳는다는건 상상하기 힘든 고통이라는것을 어린마음에 어렴풋이 알아버렸던것 같다.

2006년 8월 16일, 출산을 앞두고 의연하게 대처하던 아내의 얼굴을 보면서 그때를 떠올렸다. 아내보다 몇 살 더 많아 어른인척 했던 나는 그 시점 이후로 어른인척을 깨끗이 포기하고 말았다.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저렇게 평화롭게 대처할 수 있는지 존경스러웠기 때문이다. 태어난 아이도 경이롭지만 그 아이를 10시간의 산고 끝에 낳은 아내 역시 경이롭긴 마찬가지였다. 임신기간 10개월 3일을 평범한 산모들에 비해 수월치 않게 보낸 아내이기에 그녀의 고생은 뭐라 표현할 말이 없었다. 더불어 그 이후로는 아내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존경심이 들 정도였다.

고등학교 은사이신 홍일섭 선생님께서는 아이를 낳은뒤 간호사가 출산 소식을 전하러 나올때 다음과 같이 물어보라 평소에 가르치셨다.

"산모와 아이는 무사합니까?"

당시 만연했던 "아들이예요?' 혹은 '아들이예요 딸이예요?" 라고 물어보는 것은 남존여비 사상이 남긴 유치한 잔재라 덧붙이셨다. 멋진 대사라 여겨져 나중에 아이를 낳을때 써먹으리라 여기고 있었다. 18년이 흐른후 정작 써먹어야 할 상황에서 나는 이 대사를 써먹지 못했다. 아이의 분만에 참여했기에 굳이 간호사를 기다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감동적인 멘트를 나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은 직후에 아내에게 한말은 정말 멋없는 대사였다.

"수고했다. 정말 고생했어!"

수많은 말을 준비해갔지만, 당시 그말 외에는 딱히 머릿속에 떠오르질 않았다. 그리고 저 단순한 대사도 억지로 목구멍에서 끄집어내 뱉은 말이기도 했다. 아마도 겁에 질려있었던듯 하다. 아 창피해!

아이를 낳자마자 아내는 단 두마디를 하고 회복실로 들어갔다.

1. "다시는 (아이를) 안 낳을거야!"

2. "내가 뭐랬어. 아들이랬잖아!"

나중에 들어보니 정작 본인은 그런말을 한 기억이 없다고 한다. 고생스러워서 잊었으리라. 이후 집안 어른들이 둘째이야기를 하면 별말없이 웃음으로 넘어가곤 했던것은 이러한 아내의 고생이 생각나서이다.

하지만 수년이 흐른후 아내의 입에서 둘째에 대한 욕심이 언급되자 깜짝 놀라버렸다. 그 고생, 그 고통을 어느새 잊었단 말인가.


아이가 태어나 우리 가정에 온다는 것. 그것은 부모의 인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남는다. 물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기에는 만만찮은 난관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세상의 어머니들은 그러한 고통을 감내하는 힘이 있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여! 당신들을 존경합니다!

인생 최고의 행복한 순간을 다시 만들자 이야기하는 아내여! 당신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