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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살아가며

큐(Cue)



“마대리 퇴근하고 계획 있나? 없으면 한 잔 하고 가지 그래?”
“좋습니다!”

중견 컨설팅회사 입사 3년차의 마세일 대리는 퇴근시간 즈음에 실장의 제의에 기분 좋게 응답했다. 서울에 홀로 상경해 생활하는 세일에게 퇴근이후 시간은 그리 바쁠 것도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지난 2년간의 경험으로 보건데, 연말연시의 화사한 풍경 속에서 집안에 홀로 식사를 챙겨먹고 TV앞에 홀로 앉아있는 풍경은 그리 즐거운 경험은 아니었다.

“ 실장님, 한 잔 하고 한 게임 어떻습니까? ”
“ 그것도 좋겠지! 김 대리 당구수지가 얼마나 된다고 했더라? ”
“ 150 칩니다! ”
“ 저 친구는 바닷가 출신이라서 그런지 꽤나 짠 편입니다. 아마 대학가 근처로 가면 200은 놔야 될겁니다. 하하... ”

세일의 입사 동기인 김성현이 당구 이야기를 꺼내자 갑자기 사무실에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세일을 제외한 사무실에 있는 남자직원 3명은 당구를 몹시 좋아하는 인물들이었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세일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 아참... 마대리는 당구 못 친다고 했나? ”
“ 아...저는 당구큐도 잡아본 적이 없습니다만... ”

세일은 애초에 당구라는 생활스포츠엔 관심이 없었다. 운동이 된다고 생각도 안들 뿐더러 담배연기 자욱한 좁은 공간에 앉아 있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있었다. 이런 세일의 인식은 당구장이라는 곳이 사회적으로 질 낮은 사람들이 간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는 것과 대학 재학때와 졸업 후 해외 연수 등으로 친구들과 어울려 당구를 칠 수 있는 기회를 쉽게 접하지 못했다는 것도 한몫했다.

“ 마대리도 이번 기회에 한번 배워보지 그래?  "
" 그래,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식군데 자네만 빼고 당구치러 가는것도 좀 그렇지 않아? "
" 일단 한번 쳐보고 생각해 보라고! "
" 네... 잘 부탁드립니다..."

세일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당구를 어느정도 배우긴 배워야 겠다고 생각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닥 흥미가 생기지 않는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뭐... 그냥 흉내만 내다 나오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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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동료들은 술보다는 당구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처음부터 병맥주를 판매하고 있는 당구장으로 이동하기로 자신들끼리 의견을 모았다. 세일은 마지못해 동의를 했지만 쓴웃음을 지었다.

" 자자... 마대리는 이제 큐대를 잡았으니 30을 놓으면 될것이고... 초구를 치면 되네. "
" 아... 예 "

실장은 초구 위치를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

" 먼저 큐대는 대부분 당구장에 있는 큐들은 하우스 큐라 불리우는 저렴한 것들일세. 큐를 고르는 방법은 일단 휘지 않고 초크부분이 잘 정리된 것을 선택해야되네. 큐는 당구대에 굴려봤을때 부드럽게 굴러가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네. 자세는 자신이 편한대로 하면 되지만, 정석대로 하자면 두다리를 모은상태에서 오른발을 45도정도 꺽은뒤 어깨넓이 정도로  왼발을 한발자국정도 앞으로 내딛게. 옳지! 그리고 당구 큐대를 잡는 그립은 엄지와 검지쪽에 힘을 주고 잡는거야. 큐걸이하는 팔은 앞으로 쭈욱 뻣고, 큐 브리지를 하는 손가락은 큐끝이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게 단단히 고정해야 한다네. 그렇다고 너무 꽉잡을 필요는 없어. 그래 그렇게. 그다음에 체크해야할것은 몸의 중심과 큐대는 항상 일치해야 하네. 그래야 큐미스가 나지 않지. 옳지!  큐볼과 큐는 대략 10cm 전후로 거리를 두면 되네. 물론 강한 샷을 할때는 조금더 멀어져도 좋지만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자제하는게 좋네. "

세일은 실장이 시키는 대로 자세를 잡아가고 있었다. 어정쩡하고 좀 불편한감이 있었다. 하지만 열의를 가지고 설명하는 실장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었다.

" 자... 다음에 자네가 치는 큐볼의 상단 2시 방향을 맞추는거야. 그리고 저기 멀리 보이는 빨간공이 보이지? 그 공의 왼쪽 절반정도를 자네가 치는 큐볼로 맞추면 된다네. 뭐 초구를 치는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이렇게 치는것이 가장 정석이라고 볼 수 있지. 주의할점은 큐대의 상대를 잡은 팔은 진자운동을 생각하고 내밀면 되네. 더불어 항상 큐대는 일자로 나간다고 생각하게. 그래야 제대로된 당점에 정확히 가격할 수 있지."
" 절반이라고 하시는데... 어떻게 하면 절반을 맞추는 겁니까? "
" 자네 큐대가 저 빨간공 왼쪽 끝선을 향해 제대로 뻣어지게 된다면 1번 목적구의 절반을 맞힌다고 보면 된다네. " ... "

세일은 실장이 시킨대로 큐볼의 2시 방향을 겨냥해 앞으로 주욱 밀었다. 공은 세지도 약하지도 않게 진행해 1번 목적구의 왼쪽절반을 맞추고 입사 반사되어 제 2 목적구로 향해 굴러왔다. 공은 적절하게 2목적구를 맟추었고 1목적구와 2목적구는 왼쪽 코너에 모이게 되었다.

" 와~ 마대리 당구 처음쳐본거 맞아? "
" 그러게 난 초구라면 젬병인데 맞추는것 뿐만 아니라 공을 모으기까지 하네~! "

동료들이 감탄어린 탄성을 내질렀지만 세일은 듣지 못했다. 세일은 잠시 벼락에 맞은듯한 기분이 들었다. 몇 초가 걸리지 않은 순간이었지만 세일은 공들의 부딛침과 그로인한 입사와 반사, 당구대 위로 마찰되어 굴러가는 공의 진동까지 생생하게 각인되었다.

세일은 그순간 우주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