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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에서 영웅이 된 어느 러시아 장교의 추모현장

지금 러시아에서는

by 끄루또이' 2011. 6. 13.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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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치친야(체첸 공화국)의 분쟁이 집중적으로 벌어지던 지난 2000년 러시아 장교 유리 부다노프(48, 당시 대령)는 치친야의 18세 소녀 엘자 쿤가예바를 질식사 시켜 암매장하는 범죄를 저지른다. 이 과정 중에 그는 피해자에게 성폭행을 한 것으로도 나타났다. 

이후 법정에 선 부다노프는 쿤가예바가 치친야의 조직원이었기에 자백을 받는 임무수행 중 벌어진 우발적인 사고라 주장했지만 3년간의 지리한 법정공방 끝에 유죄를 인정받아 10년형을 선고받고 감옥 신세를 지게된다. 

당시 러시아 우익진형 입장에서는 범죄의 경중을 따지기 이전에 과격한 테러리스트 국가인 치친야를 상대로 국가를 위해 복무한 부다노프가 유죄를 인정받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었고, 그간 러시아군의 수많은 치친야 인권범죄를 비판해오던 인권단체에서는 쿤가예바 측을 도와 다양한 정보를 입수해 부다노프 측을 압박, 결국 그를 교도소로 보내게 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차이겠지만 치친야 입장에서 러시아는 자원을 노리고 쳐들어와 자국민을 박해한 극악무도한 침략자이고, 러시아 입장에서는 국익도 국익이지만 러시아 내 지하철 테러와 같은 민간인 사건사고의 배후에 치친야측 인물들이 있었기에 양국간 감정의 골은 깊었다. 

한동안 잠잠하던 이 사건은 부다노프가 2009년 1월에 9년만에 모범수로 가석방 되면서 다시금 세인의 관심을 받게 된다. 

쿤가예바를 돕던 변호사 마르켈로프와 여기자 바부로바가 부다노프의 가석방 이후 이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한 뒤 거리에서 총을 맞고 살해당한 것이다. 안티파(안티 파시스트) 등의 단체에서는 이를 가르켜 정부의 사주를 받은 우익단체(파시스트들)의 소행이라 규정짓고 다양한 시위를 통해 국민과 국제사회에 호소한다.

2000년 이후 러시아에서는 극우단체와 인권단체 간의 다양한 충돌이 있어왔다. 대체적으로 극우단체가 인권단체를 박해하는 형태였다. 뿌찐(푸틴) 집권이후 사망한 언론인만 21명에 이른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인권단체 안티파의 리더가 총을 맞고 사망한 사건과 치친야의 인권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비판 보도하던 노바야 가제타 여기자의 피살 사건일 것이다.

이는 비단 우익과 좌익의 갈등이 아니라 인종문제로까지 그 범위가 넓어지게 된다. 극우단체 일원들중 일부는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로도 유명하다. 다민족 국가인 러시아에서 이러한 위험한 사상은 극소수의 인물들이 갖는 사상이지만 이들이 벌이는 만행은 잊을만 하면 벌어지곤 한다.  이중 지난해 우리나라 연수생이 바르나울시에서 극우 청년들에게 칼에 찔려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각설하고, 몇 일 전인 6월 10일 낮 12시 30분 경에 모스크바 콤소몰스카야 프로스펙트에서 유리 부다노프가 괴한의 총을 맞고 사망했다. 가석방 이후 우익단체 산하에서 근무하던 부다노프는 사무실에서 나오던 길에 머리와 가슴 등에 6발의 총알세례를 받게 된 것이다. 이번 피격사건은 우익단체 뿐만아니라 인권단체에서도 치친야쪽 인물 혹은 아랍계 테러리스트에 의한 보복사건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인들 상당수는 그간 부다노프의 범죄를 그리 두둔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 부다노프가 백주에 총을 맞고 사망하면서 조금 다른 양상을 띄고있다. 이는 러시아인들의 성향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인들은 범죄자에게 신랄하면서 날카로운 비판의 날을 세우는데 인색하지 않지만, 극단적인 악행이 아니라면 죽은이에 대해서는 상당히 관대한 편이다. 

이번 부다노프의 사망사건 이후 그가 총격을 받은 장소에 모스크바 시민들의 추모행렬이 일고 있다. 의도가 어찌되었던 간에 인권범죄를 저질러 불명예 퇴역했으며 그대로 조용히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져야할 인물이 요 몇 일 사이에 테러리스트에 희생된 영웅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번 부다노프의 사망사건은 또다른 분쟁의 씨앗이 될 전망이다. 아랍계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변되는 보복논리는 러시아 극우단체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단 카프카즈계 사람들 뿐만 아니라 유색인종에 대한 우발적 테러도 우려되고 있다. 이를 예견한 모스크바 및 각 지역 사법당국은 보다 경계를 강화할 것이라 발표한 상황이다. 

아래 이미지들은 부다노프가 사망한지 24시간이 지난 11일 정오 사건장소 풍경이다. 


'러시아의 영웅에게'라고 적힌 종이 아래 꽤 많은 카네이션이 높여있다. 더불어 부다노프의 군복무 당시 사진도 걸려있다.

참고로 우리에게 카네이션은 어버이 날과 스승의 날, 혹은 결혼식 등의 경사스런 날에 사용되는 꽃이지만 러시아에서는 주로 헌화용으로 사용된다. 러시아에서 카네이션은 비극 혹은 전쟁의 상징과도 같다. 그리고 무사히 살아서 돌아오라는 염원을 담은 꽃이기도 하다.

러시아인은 성묘를 갈 때 흰색 카네이션이나 빨간 카네이션을 무덤 앞에 놓아둔다. 앞서말했듯이 헌화용인 셈이다. 더불어 망자를 잊지 않겠다는 의미도 함께 담고있다.


헌화용 꽃은 홀수로(대체적으로 1송이) 하는 러시아인들의 풍습을 감안하면 이 곳에 다녀간 이들이 상당수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미화환 위에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문구가 적힌 리본이 감겨져 있다. 이러한 것은 국립묘지 등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러시아인들은 추모현장에 담배를 놓아두는 풍습이 있다. 이러한 풍경은 아르바트 거리 빅토르 최의 벽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다. 


'여기에 러시아 장교 유리 부다노프가 살해당하다.' 라 적힌 종이 위에 보트카와 흑빵이 높여있다. 군대문화에서 전승된 추모의 한 형태이다.



러시아 내 추모현장에 꼭 등장한다고 할 수 있는 정교성인 상징물.




혹시 모를 사건 사고에 대비해 현장에 대기중이 모스크바 경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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