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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을 러시아어로’… 온돌방, 아궁이와 싸우는 번역가 승주연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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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루또이' 2014. 1. 1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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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고령화 가족»은 한 가족의 평탄하지 않은 삶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 속 화자인 실패한 영화감독인 나와 전과5범인 그의 형, 바람 피우다 두번째 남편에게 이혼을 당한 여동생 등 성인이 된 이후 각자의 인생을 살던 이들이 자식농사에 실패한 어미니 슬하에 다시 모임으로서 겪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구성원으로 봤을때는 더없이 우울할 것 같은 이들의 좌충우돌이 소설 속에서는 유머러스하게 표현되고 있다.

저자는 소설 속에서 다 큰 자식들이 여전히 자립을 못 하는 요즘 현대 사회의 문제를 제기한다. 함께 살면서 소설 속 등장 인물들은 함께 삶의 어려움을 겪으며, 덕분에 오히려 더 돈독해지며,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하나되는 모습을 보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등장인물들의 인생도 안정을 찾아가며, 이들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결론을 얻는다. 잘못된 판단을 하고, 성격이 까칠할 수는 있지만, 가족만큼 가까운 이가 있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각설하고.

고령화 가족이 러시아어로 번역되어 러시아 현지에서 출간되어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다.

번역자는 현재 러시아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는 동시에 번역가의 길을 걷고 있는 승주연씨다. 승씨의 한국문학 번역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2005년 공지영의 «봉순이 언니» 번역을 시작으로, 2011년에는 오정희의 단편집 «불의 강»을, 2011년에는 김애란의 단편집«침이 고인다»를 러시아어로 번역하였고, 2013년에는 김영하의 단편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 지는 아무도»도 번역한 인물이다.

20년 동안 러시아와 인연을 맺고 있는 번역가 승주연을 만나봤다.

번역가 승주연씨(왼쪽)

우선 개인 소개와 함께 현재 하시는 일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에서 러시아어 언어학을 전공(석사)했습니다. 이후 2004년부터 현재까지 러시아 전문센터 뿌쉬낀하우스에서 러시아어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2006년부터는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한국 소설을 러시아어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문학번역원에 등록된 번역 작가이기도 하고요.

”봉순이 언니(공지영 저)”, ”불의 강(오정희 저)”, ”침이 고인다(김애란)” 번역에 이어 천명관의 ”고령화 가족” , 김영하의 단편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 지는 아무도” 등 국내작가들의 작품을 러시아어로 번역해 출간하셨는데요. 

꾸준히 러시아어로 한국 작품을 번역해 출간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저에게는 한국 현대문학을 러시아에 소개한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입니다. 또한 어학을 가르치는 것 이외에 제 커리어의 확장도 고려했고요. 물론 인세 부분도 있겠습니다(웃음). 

러시아어를 가르치고 현지에서 통역한 경험을 살려 한국 소설을 러시아어로 번역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그동안 꾸준히 하고 있었어요. 명예욕일지 모르겠습니다만, 내 이름이 들어간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는 기대도 있었고요. 그리고, 러시아 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은 많은분들이 하고 계세요. 하지만 우리나라 문학 작품을 러시아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는 분들은 그에 비하면 무척 적어요. ‘블루 오션’이라 생각 했어요. 그래서 다른 많은 분들과는 다른 저만의 한노 번역을 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번역 작품 선정 기준이 있으시다면요?

처음 공지영의 ‘봉순이 언니’는 너무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히는 그 흡입력에 반해 번역을 했습니다. 나머지 작품들의 경우도 읽는 재미를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 이후로는 ‘재미, 흡입력, 작품성, 평단의 평가’를 두루두루 고려하는 편입니다. 

한국적 문화정서가 담긴 표현들을 러시아어로 옮기는 작업이 쉽지 않을듯 싶습니다. 단순 번역과는 큰 차이가 있을듯 싶어요. 어려웠점이나 난해했던 문장이 있으셨다면요? 

원론적으로 이해를 하면 번역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번역할 때 어려운 경우는 상당히 많습니다. 예를 들면, ‘형’, ‘누나’, ‘오빠’, ‘선배’, ‘선생님’, 등과 같은 한국어에만 있는 ‘호칭’을 러시아어로 옮기는 것이 특히 난해해요. 더불어 한국의 독특한 가옥형태인 ‘한옥’과 관련된 부분도 처음에는 어려웠어요. 한옥에는 ‘윗목’,과 ‘아랫목’이 있잖아요? 윗목의 국어 사전적 정의는 ‘ 온돌방에서 아궁이로부터 먼 쪽의 방바닥 혹은 불길이 잘 닿지 않아 아랫목보다 상대적으로 차가운 쪽’입니다. 이때 역자는 ‘온돌방’, ‘아궁이’라는 ‘복병’을 만나게 되요(웃음). ‘윗목’을 설명하려면, ‘온돌방’과 ‘아궁이’를 설명할 수 밖에 없게 되거든요.

사실 러시아어와 한국어의 언어 혹은 논리 체계 차이로 인해 번역가는 한국어 텍스트에는 없지만, 러시아어 텍스트에는 명시되어야할 ‘생략된 논리’를 언급해줘야할 경우가 많아요. 이 외에도 한국어에는 ‘수’의 개념이 좀 두루뭉술할 때가 많아요. 예를 들어 ‘이가 아파서 병원에 갔다’라는 문장이 한국어로는 자연스럽지만, 러시아어로 옮길 때는 고민이 됩니다. ‘과연 이가 하나가 아픈걸까? 여러 개가 아픈걸까?’ 이렇게 말이죠(웃음).

텍스트를 이해하기 힘들어서 번역에 애를 먹었던 적도 있습니다. 작년 여름에 어느 작가분의 시와 수필을 번역한 적이 있습니다. 번역자로서 굉장히 힘든 기억으로 남습니다(웃음). 저와 공역자가 머리를 맞대고 씨름한 것은 물론이고, 시는 시여서 힘들었고, 수필은 거의 논문에 가까운 작가의 이론이 들어가 있어서 힘들었습니다. 이 작품을 의뢰한 출판사 담당자도 ‘선생님, 가능하실까요? 제가 국문과를 나왔는데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들이 많아서요’라는 질문을 할 정도 였거든요(웃음). 가령, ‘어머니가 냉장고 위에 누워계신다’라는 문장, ‘고등어가 코를 곤다’ 등등. 총 13페이지 중 13페이지 모두가 고민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부득이하게 작가 선생님과 대화하듯 메일을 주고 받으며 번역했습니다. 친절한 작가 선생님 덕분에 무사히 기한 내에 번역을 마칠 수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역시나 번역가는 아무나 하는일이 아니네요(웃음). 직간접적으로 번역한 작품에 대한 피드백을 받으셨을 텐데요. 게중에 러시아인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2012년에 출간된 오정희의 ‘불의 강’은 번역 자체는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 너무 우울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에 반해 2013년 12월에 출간된 천명관의 ‘고령화 가족’의 경우는 읽는 사람들마다 아주 재미있고, 번역도 굉장히 훌륭하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그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은, 러시아 내 한국어과 교수 연합의 회장님이 이 책을 읽고, 제 페이스북에 메시지를 남겨 주셨어요. 너무 재미있고, 무엇보다 교수님이 최근에 본 역서 중 가장 훌륭한 번역이라고 극찬을 해주셨죠. 과분한 평가라 생각합니다만, 보람을 느끼기도 했죠.

승주연씨가 러시아어로 번역한 고령화가족(위)과 불의 강(아래)
 
다른 이야기를 해보죠. 번역가이자 러시아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지난해 7월 국내에 러시아어 교재(승선생의 119 러시아어)도 출간하셨습니다. 해당 교재는 국내에 흔치않은 중급 수준의 학생을 염두에 둔 내용인데요. 반응은 어떤가요?

그 교재는 몇 년 간 공을 들여서 썼어요. 번역가로서 일을 하면서 러시아를 배우는 이들이 꼭 알았으면 하는 표현들과 어휘를 많이 넣으려고 애썼죠. 더불어 문법을 위한 문법이 아닌, 책이나 텍스트를 읽고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필요한 내용을 담으려 했습니다.

저도 사실 학생들의 반응이 궁금했습니다. 저 나름 ‘문법을 위한 문법서’에 대한 반기를 든 시도였거든요(웃음). 반가웠던 것은 출간 이후 여러 학생들과 만나면서 이미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알고 있다는 거였어요. 또 얼마전에는 대구에 있는 한 대학교에서 교재로 검토 중이라는 소식도 들었고요. 

러시아어 토르플 시험 공인 감독관 자격이 있으신데요. 러시아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토르플을 해야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신다면요?

사실 플렉스나 스널트는 국내에서만 시행되는 자격증이에요. 그에 반해 토르플 시험은 러시아어 정부에서 시행하는 시험이고, 다른 유럽의 여러 공인 인증 시험과 같은 기준으로 단계를 정하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해외에서는 국내 시험이 인정이 되지 않아요. 그점을 고려했을 때 한국과 해외 모두에서 인정받는 시험인 토르플 자격증이 좀 더 유용하게 쓰인다고 봅니다.

일각에서 러시아어 토르플에 대한 무용론을 접한적이 있습니다. 반론을 제기해 주신다면요?

‘근거없음’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국내에서만도 연세대학교 토르플 센터, 에듀랑, 부산대, 대구의 계명대 등 토르플 센터를 점점 늘리는 추세입니다. 유럽과 같은 기준으로 단계를 나눈 시험은 토르플이 유일하고, 앞서 말씀드렸듯이 국내외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격증은 토르플 자격증이 유일해요. 러시아 정부에서 인정하는 외국인을 위한 러시아어 공인 자격증 역시 현재까지는 토르플 밖에 없고요. 다른 대안이 없다는 점만 보더라도 토르플 시험에 대한 ‘무용론’ 은 근거가 많이 약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러시아어는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실때 애로사항은 없으신가요?

사실, 학생들을 가르칠 때 가장 힘든 부분이 러시아어에 있는 ‘동사의 상(相, aspect)’이라는 부분인데요, 국어에는 ‘먹다’라는 동사가 하나이지만, 러시아어에는 ‘먹다’란 동사가 3개에요. 이 부분이 학생들이 러시아어를 받아들일 때 가장 힘든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이는 한국인들 뿐만 아니라 모든 외국인들이 러시아어를 대할때 느끼는 부분일 겁니다.

한국 학생들의 경우 격변화와 명사의 성도 난관일텐데요?

우리나라 학생들에게는 그렇기는 합니다. 다만 유럽에는 격이나 성을 구분하는 언어들이 있기에 ‘동사의 상’보다는 조금 수월하지 않을까 싶어요. 


한러 간 무비자 제도가 도입되는 등 예전에 비해서는 나아지고 있지만 러시아와 한국 간 교류가 생각보다 더디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무비자 협정이 발효되는 시점이 올해 1월 1일이고, 이제 겨우 열흘 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속단하기에는 다소 이르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일단 2014년과  2015년이 양국(한러) 방문의 해에요. 또 올해가 조러통상조약 130주년이 되는 해이기에 관련된 다양한 문화 행사, 관광 상품이 쏟아져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양국 모두 현재보다는 훨씬 더 많은 관광객이 오고가게 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한국 혹은 러시아에 관한 관심도 지금보다는 높아질 것이라 예상됩니다. 사실 이미 러시아어권에서 한국으로 의료 관광을 오는 외국인이 많아요. 의료 관광을 오면 치료도 받고, 자연스레 관광도 하게 되는거지요.

물론 실제로 어떤 구체적인 계약이나 수주 등을 이끌어낼 것인가는 정치적, 경제적 복합요인이 있기에 제가 언급할 부분은 아닌듯 싶습니다. 

가벼운 질문 몇 개 드릴께요. 학창시절 혹은 유학시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시다면요?

제가 유학 시절에 맹장 수술을 받은적이 있어요(웃음). 사실 수술이라는 걸 한국에서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걱정도 되고, 무섭기도 하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친절한 의사와 친절한 간호사들 덕분에 생각보다는 덜 험하게 이겨냈어요. 시립 병원 건물은 좀 우중충했지만, 무사하게 잘 치료하고 퇴원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의사도 아프리카 유학생이어서 같은 유학생으로서 외국인인 저에게 더 잘 해줬던 것 같아요. 그리고 병원에 있었던 덕분에 ‘링거’, ‘수술실’, ‘맹장’ 등 병원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들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병원에서까지 공부를 하신거군요(웃음). 러시아 시립병원이 친절하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혹여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나 작가가 있다면요?

개인적으로 ‘빅또리아 또까레바(Виктория Токарева)’라는 여류 작가를 좋아해요. 공지영 작가와 비슷한 것 같아요. 작품의 재미는 물론이고 사물을 보는 시각이 좀 독특하더라구요. 또한 ‘유리 뽈리꼬프(Юрий Поляков)’라는 작가의 작품도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소설가 중에서는 김애란 선생님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달려라 아비’라는 소설집을 재미있게 읽었거든요. 사실 번역하고 싶어서 눈독을 들였던 작품이기도 한데요. 이미 다른 번역가가 진행하고 있어요(웃음).  

90년 한러 수교를 기준으로 볼때 1.5세대 혹은 2세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데요. 러시아어, 러시아 문학을 배우려는 후배들에게 선배로써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혹은 격려의 메세지도 좋습니다. 

러시아어를 배웠던 안배웠던 간에 러시아어가 어렵다는 것은 상식처럼 알려지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한국과 러시아가 서로 다른 나라이듯이 한국어와 러시아어는 많이 다른 언어들입니다. 논리 체계가 다르고, 사고 방식이 다르고, 문화가 다릅니다. 러시아어를, 혹은 문학을 공부하고이하는 러시아의 문화, 역사, 문학, 생활 방식을 두루 두루 이해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언어는 기능적으로만 접근하면 포괄적으로 제대로 이해할 수 없어요. 

제 경험상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오래 할 수 있고, 창의성이 생기고,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러시아어를 좋아하시나요? 러시아가 아무런 이유 없이 좋으신가요? 그렇다면 주저 없이 도전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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