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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영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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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 처음으로 영화가 출현한 것은 1896년 5월 프랑스의 뤼미에르영화사가 페테르부르크에 영화관을 개설한 때였다. 그리고 러시아인의 손으로 영화가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1908년경이다. 그후 무대연극을 그대로 촬영하거나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문예영화 등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제1차 세계대전 및 1917년 러시아혁명을 맞게 되었다. 그러므로 러시아 영화란 곧 소비에트시대의 영화가 근간을 이룬다.

러시아 영화는 엄밀하게 따지자면 1919년 8월 레닌이 직접 서명한 '영화산업 국유화 포고'가 발효한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본다. 이에 앞서 레닌은 이미 영화의 선동성과 전달성을 간파하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예술은 영화이다"라는구호 아래 선동영화와 기록영화를 제작, 사회주의 사상의 대중침투에 동원하였다. 그러나 영화예술이라는 측면에서 소련영화가 부각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은 V.
푸도프킨과 S.에이젠슈테인 두 사람의 등장이었다. 이들은 함께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몽타주이론 이론'을 체계화하여 주창함으로써 명성을 떨쳤다. 이것은 오늘날까지도 영화이론의 출발점으로 중요시된다.

에이젠슈테인의 《전함 포템킨》(1925)과 푸도프킨의 《어머니》(1926)는 소련 무성영화시대의 걸작으로 꼽히는 영화로, 영화 선진국인 미국이나 유럽 등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영화기법을 인정한 작품이다. 역시 무성영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감독 A.도브젠코의 《대지()》(1930)는 회화적인 아름다움과 서사시적인 수법을 화면에 도입하여 또다른 의미에서 소련영화의 특질을 드러낸 작품이다. 1930년경을 경계로 소련영화도 유성영화시대로 접어들지만, 때마침 이 무렵은 소련의 예술활동 전분야에 걸쳐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회오리 바람이 불어닥친 시기였다. 그래서 영화제작도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지상과제로 삼는다는 선에서만 가능하였고, 또 그와 같은 기준에서 모든 영화작품이 평가되었다.

구소련이 국가적으로 최대의 위기를 맞은 것은 1941년
히틀러의 독일군에 의한 침입이었다. 혁명 초기에 큰 구실을 톡톡히 하던 소련영화는 이번에도 그들의 '대조국전쟁()'에서 또다시 큰 힘을 발휘하였다. 기록영화가 다시 각광을 받으며, 모스크바·레닌그라드(페테르부르크)·스탈린그라드(볼고그라드) 등의 방위전을 기록한 전쟁영화가 잇달아 제작되어 전쟁의욕을 고취하는 수단으로 동원되었다. 또 극영화로는 우크라이나 농민의 대독()투쟁을 다룬 M.돈스코이의 《무지개》(1944)가 제작되었다. 1944년, 전쟁은 승리로 끝났으나 그것은 한편으로 스탈린주의라는 열악()한 유산을 남겼다. 스탈린을 신격화()한 일련의 작품들이 요란스럽게 쏟아져 나오는 한편에서는 맥빠진 정치선전 영화가 판을 쳤다.

에이젠슈테인의 갑작스런 죽음을 초래한 것도 스탈린주의였다. 그는 당초 3부작의 구상으로 《이반 뇌제()》 제1부(1944)를 완성하였으나, 당국의 가차없는 간섭에 충격을 받고 심장발작으로 사망하였던 것이다. 53년 스탈린 사망 후, 해빙기()가 찾아오자 영화도 겨우 생기를 되찾게 되었다. 소련영화의 해빙은 G.추흐라이의 《여저격병() 마류튜카》(1956), M.칼라토조프의 《학은 날아간다》(1957) 등에서 시작되어 역시 추흐라이 감독 작품 《병사의 노래》(1958) 《맑게 갠 하늘》(1961) 등으로 이어졌다. 소련영화에서 특히 두드러진 현상은 문예영화의 유행이다.

러시아문학의 고전작품을 물량()과 시간 및 제작비에 구애받지 않고 70mm 대형화면 등으로 잇달아 촬영하였는데, 이것은 소련영화가 국영()이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스탈린시대에 경시되거나 배제되었던 러시아의 예술유산을 영상을 통해 대중에게 확산시키고 구소련의 국력()을 영화작품을 통해 대외적으로 시위하는 한편 해외시장도 개척해 보겠다는 의도도 있었다. 할리우드의 거대한 영화산업 자본으로도 벅찰 만큼 호화판인 대작() 《전쟁과 평화》(1965∼1967)를 첫 작품으로 내놓은 이래 《안나 카레니나》(1967), 《카라마조프의 형제》(1968), 《죄와 벌》(1969), 그리고 투르게네프의 《귀족의 보금자리》(1969) 등을 차례로 발표하였다.

그 밖에 《햄릿》 《리어왕》 《돈키호테》 등 셰익스피어극을 비롯한 외국 고전문학작품에 대한 영화화에도 손을 뻗쳤다. 이와 같은 작품은 원작의 자유로운 현대적 해석을 피하고 원작의 충실한 재현에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는 점이 하나의 특색이다. 또한 스탈린시대 같았으면 서구적이라거나 근대주의라는 낙인이 찍혀 틀림없이 탄압을 받았을 새로운 수법의 작품들이 때로는 문제를 일으키거나 국내적인 비판을 받으면서 고개를 들었다.

●몽타쥬(montage)기법 : 러시아 영화 감독인 아이젠슈타인의 <전함 포템킨>에서 사용한 기법으로서 이질적인 소재를 같은 화면 위에 포개어 놓는 기법이다.
(이 영화에서 군중들이 시위진압대에 쫓겨 계단으로 몰려가다가 많은 사람들이 사상되는 장면을 표현하기 위해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유모차의 모습을 병렬적으로 보여줌- 오테사 계단의 학살장면 - 이 장면은 헐리웃 영화 '언터쳐블'에서도 사용되어졌다.)
소설에서는 두 개 이상의 사건을 동시에 보여 줌으로써 독자들이 그 사건의 이중 층위의 의미를 스스로 깨닫게 하는 기법으로 자주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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