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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살아가며

전면 무상급식 반대 단체 관계자와 말다툼했던 사연

어제 오늘 정치면의 주요이슈인 '무상급식 전면 실시 주민투표'를 보니 생각나는 것이 있어 얼마전 겪었던 이야기 하나 할까합니다.  

먼저 말씀드리는데요. 전면 무상급식 찬성이냐 반대냐와 같은 이야기는 아니예요. 그냥 전면 무상급식 반대 서명을 받던 분이랑 엮였던 사소한 에피소드이고 딱히 한쪽으로 치우치는 결말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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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꽃이 흐드러지던 봄의 끝자락에 가족과 함께 인근 산에 나들이를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한동안 병원신세를 지는 바람에 체력이 바닥을 치던 때라 운동도 할겸, 반년 넘게 아이랑 제대로 못 놀아준것 같아 시간도 보낼요량으로 겸사겸사 발걸음을 했었지요.

벗꽃이 이쁘게 떨어진 도로를 지나 집근처 생태공원을 가로지를때만 해도 꽤 즐거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산 입구에서 조금 묘한 경험을 하게 됬는데요.  

이 사진을 찍다가 생긴 에피소드입니다. 어디서 많이 보던 거죠?


9년 정도 블로그질을 하다보면 외출할때는 습관적으로 카메라를 챙기게 됩니다. 똑딱이냐 DSLR이냐 차이만 있을 뿐이죠. 더더군다나 가족과 함께 나가는 여행이나 산책이라면 말할것도 없이 가방에 넣고 나갑니다. 
 
벛꽃이 흐드러진 등산로 초입에서 가족 사진도 찍고 주변 풍경도 찍다보니 위와 같은 현수막이 뷰파인더에 잡히더군요. 그야말로 습관적으로 셔터를 눌렀습니다.  

'찰칵' 소리가 나기 무섭게 서명탁자 주변에 있던 여성분들이 대뜸 다가오더군요. 

''왜 사진을 찍으시는거죠?"


당시 저는 이 단체가 뭘하고 있는지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몸이 안좋은 시절을 보내면서 부득이하게 10개월 가까이 세상소식을 끊고 살았던지라 무상급식과 관련된 이슈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일단 당황스러웠습니다. 뭔가 오해가 있나 싶어 얼른 답변을 했지요.

"얼굴은 찍지 않았어요. 현수막 테이블만 찍었습니다" 

"일단 사진을 찍으시려면 먼저 소속을 밝히시고 찍어도 되는지 안되는지 당사자에게 물어보셔야 하는거 아닌가요?"


뭘 찍었건 간에 맞는 말이니 뭐라 할말이 없더군요. 

"예 죄송합니다. 별 생각없이 찍었네요."


여기에서 그분이 사과 받아주시고 끝났으면 앞으로 조심해야지라는 개인적 교훈을 얻는 선에서 끝났을겁니다. 그리고 다시 즐거운 마음으로 산행을 했겠죠. 근데 이분들이 순순히 끝내주지 않으시더군요. 

"동의없이 사진찍으면 초상권 침해인거 아세요? 모르세요?" 

"...인물사진도 없는 현수막에도 초상권이 있습니까?"

"있어요! 무조건 사전에 동의를 받으셔야 되요. 안하시면 법에 걸려요! 그것도 모르세요?"


조금 의아스러웠습니다. 사람 얼굴이 없는, 글자로만 이루어진 현수막에 '초상권'이란 단어가 어울리나 하는 생각이 스치더군요. 그런데 상대방이 어찌나 단호하게 말하던지 제가 세상사에서 멀어져 있던 시기에 새로운 법률이 생겼나라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조금 난감해하는 중에 그 여성분이 이어서 물어보시더군요.

"소속이 어디신데 찍으신거예요?"

"?"


아! 초상권은 그냥 준비된 멘트이고 이 분들이 정작 궁금했던 것은 제 진정한(?) 정체였던 것이었습니다. 유추하건데 '사진기를 들고다니는 직업'을 가진 분들과 뭔가 안좋은 일이 있어 이러는구나로 의식이 넓어지더군요.

아마 거기서 다시 사과하고 '몰라서 그랬다'라고 했다면 무난히 마무리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근데 '미안하다'라고 다시 말하는 것은 싫더군요. 중죄를 지은것도 아니었고 그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동의없이 카메라 렌즈를 10m 전방에서 현수막쪽으로 들이댄 잘못'은 앞서말한 사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10개월 만에 나온 가족나들이길을 '초상권'이니 '소속'이란 단어를 쓰며 취조하듯이 몰아가는게 불쾌해지기 시작했어요. 

"광진구민입니다!"

"네?"

"광진구민이라구요. 이 산이 위치해 있는 지역구 사람이라구요. 그러는 아주머니들은 여기 사세요?"

"....우리는 자원봉사자예요!"

"어디 자원봉사자신데요?"

"...현수막에 나와있는것 처럼 00입니다."

"그럼 자원봉사 계속 하세요! 괜히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출신성분 조사하지 마시구요!"


한 마디 쏘아 붙이고 뒤도 안돌아보고 가족 손을 잡고 등산로로 향했습니다. 다행히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는 않으시더군요. 감사하게도.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면서 와이프가 한 마디 하더군요. 

"어디서 본건데 저 단체 사람들 어디 신문 기자들인가... 블로거 기자단인가 하고 한 판 했다더라."

"그러면 그렇지..."


이러한 일이 비단 저한테만 있었던 것은 아니더군요. 집데 돌아와 이 단체와 '무상급식'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니 제가 겪은일과 거의 대동소이한 사례들이 상당수 보입니다. 전면 무상급식 반대 서명을 받는 단체들도 제가 본 단체 외에도 몇 곳이 더 있더군요.

웃겼던 것은 이 단체와 시민간, 혹은 기자간 사소한 마찰의 시작은 거의 대부분이 '사진 왜 찍어요?'로 시작한다는 것이었는데요. 제 사례와 다른점이라면 다른이들한테는 얼굴을 안찍으면 사진찍는게 허용되었다는 것 정도겠네요.  

단편적인 경험을 일반화 시킬수는 없겠습니다만, 일부 다른분들의사례와 제가 겪은 것을 종합해보면 이 단체의 관계자들께서는 사진기에 상당히 민감한 반응으로 일관한다는 것입니다.

자원봉사자라면서요? 그분들이 말씀하시듯이 포퓰리즘을 경계해야하고 추방해야 한다면 자신들의 행동을 자랑스럽게 여기셔야 하는거 아닌가요? 그렇게 옳은 시민운동이라면 보다 시민들에게 당당해야 하는거 아닐까요? 그런데 왜 제눈에는 피해의식, 혹은 개인신상에 손해를 보기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을까요? 자원봉사자라면서요?

기자나 블로거들에게 싫은소리를 들어서? 이 나라가 공산주의 국가도 아니고 흰색이 있으면 검은색, 회색도 있는것이 정상 아닌가요? 모두 같은 의견일수는 없는거잖습니까. 그러면 당연히 다른 의견이나 비판도 있을수 있는겁니다. 그정도 각오를 안하고 시민을 설득하러 나오셨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으신 거겠죠. 

여기까지는 그렇다치자구요. 천성적으로 얼굴 노출을 꺼리는 분들이 이 단체에 유독 많이 있을수도 있을겁니다.

그런데 현수막 초상권은 어디서 교육 받으신 건지가 궁금해요. 맞고 틀리고를 따지는게 아니구요. 사진기 소리가 나자마자 달려와서 초상권 이야기를 쏘아대는건 이런 경우가 이 단체에 몇 차례 직-간접적으로 있어왔고, 그다지 좋은 기억이 아니었으며, 거기에 대한 대비책으로 미리 입을맞춘 답변이라는 것은 쉽게 추측할수 있었는데요. 그렇지 않고서야 기다렸다는듯이 초상권 이야기를 일사분란하게 할리 없겠죠. 

이렇듯 서명 장소 주변에서 벌어지는 불온한 행동(?)을 예의주시하고, 말도 안되는 자구책까지 마련해 전사처럼 달려와 소속 운운하시는건 본인들이 주장이 옳다고 생각해서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혹시나 모를 개인적 불이익을 우려한 것일까요? 왜 이분들은 그렇게 주변 시선에 예민한걸까요? 시민들이 서명을 하는 것을 지켜보기 보다 사방경계를 더 신경쓰는것 같아보인 것은 제 착각이었을까요?

뭐 좋습니다. 이상한 사람이 사진 찍어가 얼굴공개하고 신상공개하는 나쁜사례가 발생할수도 있을테니까요. 없는일도 아닐테지요. 이해하려고 하면 뭔들 못하겠어요.

얼마전 유럽 게시판에 세계 여러나라 초등학교 점심이라는 제목의 글이 퍼진적이 있었는데요. 위 사진은 한국 초등학교의 점심식사로 소개된 이미지입니다. 


위에 언급한 에피소드가 저에게 좋은 일을 한 것도 있어요. 이번 무상급식 이슈에 대해 좀더 생각할 계기를 마련해줬거던요.

다만 기사들과 블로거들의 글만 봐서는 딱히 판단을 내리기 모호했는데요. 그래서 서울지역에서 교사노릇을 하고 있는 와이프한테 의견을 물었습니다. 아무래도 현장과 가까운 곳에 있으니 저보다는 올바르게 판단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와이프는 전면적인 무상급식 찬성, 소득수준에 따른 단계적 무상화 시행은 반대로 결론짓더군요. 그녀 성향을 아닌지라 여기까지는 예상했던 것인데요. 그 다음 이야기가 좀 인상에 남더군요. 

와이프가 더 고민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현재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와 주변 몇몇 초등학교의 무상급식 운영방식이라고 합니다. 

와이프가 언급한 몇몇 초등학교 내에서는 무상급식과 유상급식을 하는 아이들로 확연히 나뉜답니다. 물론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이게 너무 공개적으로, 누구나 알 수 있게 구분 된다는 것이 문제라고 하더군요.

무상급식을 원하는 아이가 있으면 공개적으로 손을 들라고도 하고, 학교 방송으로 무상급식 하는 아이들을 호명한답니다. 무상급식 신청서는 쌍팔년도 신상조사서 같아서 아이 뿐만 아니라 부모들의 속을 후비는 내용도 적잖다고 합니다. 

무상급식이 공개되는 것을 꺼리는 아이들을 배려해 우편함과 같은 곳에 신청서를 써서 넣어도 된다고는 하는데요. 이 함이 거의 공개된 장소에 설치되어 있기에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열람이 가능하다고 하네요. 그나마 개선된 방식이 학교 전산실을 통해 PC로 신청하는 방식인데요. 이 방식 역시 제대로 잘 이루어지지 않을뿐더러 결론적으로는 교무실이든 강당이든 무상급식하는 아이들을 따로 모아놓고 확인작업을 하는지라 결국에는 비밀이 아니게 된다고 합니다. 공짜밥 얻어먹기 쉽지 않죠?

와이프는 이와같은 것들이 어린이들의 동심을 다치게 하는 과정이라고 하는데요. 철 없는 아이들 중에서는 이것을 근거로 패거리를 짓기도 한답니다. 이런 사정을 아는 부모들 중에는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일부러 유상급식을 신청하는 이들도 상당수 있다고 하네요.

끝으로 와이프한테 물었습니다.

"(저소득층이라는 전제하에)소득수준에 따라 무상급식을 한다치자구. 우리애 초등학교 입학하면 무상급식 신청할꺼야?"

"애 눈치밥 먹이기 싫어서 안할것 같아. 애들 점심 한 끼 2~3000원 꼴인데, 몇 정거장 걸어다니더라도 한 달 6만원 더 내고 말아. 하지만 현재의 급식 무상화도 운영 방식에서는 뭔가 지혜로운 개선이 필요해."


각설하고, 어제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라는 단체에서 80만명이 넘는 서명을 받아 주민투표 청구를 준비중이란 소식 다들 들으셨을 거예요. 빠르면 8월말 경에 투표가 실시된다고 합니다. '지속적 복지'를 주장하시는 서울시장께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환영의 입장을 표하셨구요. 서울시장을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개인 정치검증을 위해 세금이 180억(투표비용)이나 나간다는 현실이 씁쓸한건 있어요. 

투표가 실시 된다면 가족들이랑 같이 투표에 참여할 생각입니다. 어쨓거나 저도 서류상으로는 서울시민이니까요.  

ps. 위 이미지에 해당 단체명과 도메인 주소는 모자이크 처리했어요. '초상권 침해'로 고소당하면 안되잖아요. 참고로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는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