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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2프로 부족할때

러시아의 술문화


러시아의 술


러시아인은 보드카를 좋아한다. 보드카가 러시아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속죄양의 역할을 떠맡고 있는 면도 있다. 특히 서구인들은 자신들이 예상치 못한 일이 러시아에서 발생하면 그것의 원인을 러시아 사회의 문화 또는 자기들의 러시아 문화에 대한 몰이해에서 찾기보다는 손쉽게 보드카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
종교와 음주
러시아인들은 고대로부터 알코올 도수가 낮은 크바스를 일상적인 음료로 마셨으며 종교적·개인적 축일에는 도수가 높은 벌꿀술(Miod)을 마셨다. 그리스 정교를 수용한 988년을 전후해서 비잔틴과 소아시아에서 온 포도주가 종교행사와 의식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리스 정교가 수용된 후에도 러시아인의 음주문화는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러시아인들은 음주행위를 죄악과는 거리가 먼 삶의 일부로 보았으며 천국은 술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을 찬양하기만 하면 간다고 생각했다. 탄생, 세례, 결혼, 죽음, 추수감사절, 토지의 임차 계약을 맺었을 때 목동을 고용해 술을 마셨으며, 종교적 축일은 술을 실컷 마실 수 있는 음주 일이었다.

보드카의 역할

보드카는 러시아의 정신을 잘 담고 있다. 보드카는 러시아인의 순수한 정신을 나타내주고 이 정신을 마심으로써 사람들은 진짜 러시아인으로 다시 태어난다. 러시아인들이 보드카를 마시는 것은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하나의 예식이다. 또한 보드카는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맺어주고 관계를 깊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러시아인들은 보드카의 신비한 힘 또는 효능을 믿고 있다. 열악한 의료시설밖에 없었던 시기에 보드카는 마취제의 역할을 하였으며, 약으로도 쓰였다.

러시아의 음주문제와 금주

러시아에서 과다한 음주로 인한 문제는 지구상의 모든 사회와 같은 양상을 보인다. 정신적·육체적인 피폐와 이로 인한 가족폭력문제, 과도한 술값 지출로 인한 경제적 몰락, 범죄율 급증 등 이런 이유로 해서 러시아에서도 정치적 대변혁 후에 음주문화를 개선하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 볼셰비키들은 소련 정권의 초창기인 1917∼23년 사이에 보드카 생산을 완전히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이 조치는 밀조 보드카의 대량유통을 유발했고, 이것이 초래한 사회적 부작용은 컸다. 소련의 개혁을 추진하던 고르바초프 역시 1986년에 금주법을 관철시키려고 하였는데, 이 노력은 대다수의 민중들이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해서도 등을 돌리게 하였고,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단축시켰다. 1994년 옐친은 부족한 국가 예산을 충당하기 위해 보드카에 대한 주세를 인상하려고 하였다. 이 조치에 노동자뿐만 아니라 언론마저 격분을 하자 백지화 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