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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러시아에서는

러시아 학부모들이 어린이날에 피켓을 들고 집회를 벌인 이유


어제 6월 1일 러시아의 어린이날(어린이 보호의 날)을 맞이해 모스크바 중심가에 어린이를 대동한 수천 단위의 가족들이 모여들여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는 말씀을 드렸었는데요. 같은 모스크바이지만 다른 한켠에서는 어린이날을 가족과 함께 즐기는 것이 아니라 집회를 벌이기 위해 모인 수 백명의 학부모들도 있었습니다. 

이들 학부모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는 정부의 교육정책에 연관이 있습니다.


최근 러시아는 실세 장관으로 분류되는 안드레이 푸로센코 교육부 장관의 주도로 교육체계에 과감한 손질을 예고했습니다. 교육 자율화 정책의 일환으로 고등교육 개혁안을 발표한 것인데요.

이 개혁안을 요약하자면 비능률적인 학생들의 학문수준을 높이고 특화된 교육을 통해 국가미래에 도움이 되는 교육을 집중적으로 하자는 것인데요. 예를들자면 러시아 교육체계에서 그간 필수과목이었던 러시아어와 러시아 문학, 역사 과목을 선택과목으로 바꾸고 사회에 필요한 실질적인 학문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공교육 시설의 상당수를 민간에 넘긴다는 복안도 있습니다. 

이러한 푸루센코 장관의 개혁안에 대해 상당수 러시아 학부모들과 시민단체 및 일선 교사들의 생각은 궤가 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요. 국가 소속원의 근본을 가르치는 국어와 역사 문학을 배제시킨 개혁안은 얼토당토 않으며 푸루센코 장관이 추구하는 교육 상향화 정책은 교육질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빠진 기능인만을 양산'시키는 위험한 개혁안이라는 것입니다. 더불어 공교육의 역할을 축소해 민간에 상당부분 맡기게 되면 교육비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교육의 불균등으로 인한 지역과 계층의 차별이 이루어지는 부작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러시아는 기본적으로 '쉬꼴라'라 뭉뚱그려 불리우는 초.중.고 교육이 무상으로 제공됩니다. 자타가 인정하듯이 꽤나 잘 짜여진 커리큘럼에 의해 교육이 진행됩니다. 대학교는 진학하는 것이 어렵지 일단 합격하게 되면 학생들 절반 이상은 무료로 교육을 받으며 그나마 내는 등록금 및 기숙사비 역시 무척 저렴한 수준입니다('모스크바 국제관계 대학교(므기모)'와 같은 특수 대학교는 예외입니다). 무료로 대학을 졸업하는 학사인원만 매년 300만명에 이르지요. 더불어 다양한 항목의 장학금이 지급되며 사회 전반에서 학생들에 한해서 높은 할인률이 적용됩니다. 시쳇말로 '학생증만 있으면 천국'이라 불리울 정도입니다. 어찌보면 교육을 받는 입장에서는 이상적인 교육 체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비에트 연방시절부터 유지되어온 러시아의 교육체계는 그간 국가 재정에 부담을 주어온 것은 둘째치고 국가 경쟁력에 도움이 되는 학문의 소홀로 인해 학생 수준의 저하가 지적되어 왔습니다. 푸루센코 장관은 이번에 개혁안을 법제화해 실용적인 학문의 장으로 러시아 교육체계를 변화시키려는 셈입니다. 하지만 앞서말했듯이 상당수 학부모들과 시민단체들은 '교육은 상품(물건)이 아니다'라는 모토를 내걸고 이 개혁안에 강한 반대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8~29일 러시아 리서치 회사들에서 조사된 바에 의하면 푸르센코 장관의 개혁안에 반대한다는 의견은 답변자의 과반수가 넘는 전체 53%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어를 최고의 언어라 여기고 있으며 그 언어로 이루어진 문학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러시아인들에게 이번 교육 개혁안은 그리 달가운 정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각설하고, 어린이날의 들뜬 사회 분위기를 뒤로한채 수백명의 학부모들과 시민단체 및 교사들이 모스크바 중심가에 위치한 뿌쉬낀(푸쉬킨) 광장에 모여들었습니다. 러시아 문학과 현대 어학의 상징적 인물인 뿌쉬낀의 이름이 들어간 광장을 선택한 것은 이번 시위의 내용과 무관해 보이지 않은데요. 

이들은 안드레이 푸르센코 장관의 퇴임을 요구했으며, '교육은 상품이 아니다', '우리 학교를 내버려둬 달라', '아이들의 (교육)권리를 지켜야한다', '교육은 우리의 권리이지 서비스가 아니다'는 내용의 현수막 및 피켓을 들고 집회를 벌였습니다. 더불어 이번 개혁안을 반박하는 유인물 및 푸루센코 장관의 해임 서명을 받는 등 시민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데 집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럼 러시아 어린이들의 교육권을 지키기 위해 어린이날에 거리로 나온 학부모, 교사 및 시민단체의 집회 광경을 이미지로 소해개 봅니다. 


집회가 벌어진 장소는 뿌쉬낀 광장으로 이 광장은 끄레믈에서 도보로 20분 안쪽이면 올 수 있을정도로 모스크바 중심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광장에는 러시아 영화계를 상징하는 뿌쉬낀 영화관(모스크바 영화제 주 상영관)이 있습니다. 저 멀리 쿵푸팬더2의 광고판이 보이시죠?


이날 집회의 타이틀이라 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교육(지식)은 상품이 아니다'


다양한 피켓을 들고 집회를 벌이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입니다. 대부분 푸루센코 장관을 비판하는 내용들입니다.


시민단체 중 한명이 푸루센코 장관의 개혁안에 대해 강한 비판연설을 하고 있습니다. 


이날 집회에는 러시아 야당 '공의 러시아당'의 니콜라이 레비체프 당수가 참여해 이날 집회를 벌인 학부모와 시민단체에 힘을 실어주는 모습입니다. 








 




'상업화된 교육 반대!'



'새로운 법은 인간을 원숭이로 만든다!'




'교육은 우리의 권리지 서비스가 아니다!'





'우리 학교를 (지금 이대로)내버려둬주세요!'


<참고>
1) 러시아의 초.중.고 과정을 쉬꼴라라고 부르는데요. 쉽게 이야기 하자면 한 학교(쉬꼴라)에서 초.중.고 과정을 다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우리처럼 초.중.고를 구분해 학년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1~4 학년은 초등과정, 5~9 학년은 중등교육, 10~11 학년은 고등교육을 합니다. 

2) 러시아의 쉬꼴라는 우리나라처럼 명칭이 붙지 않고 숫자명으로 구분됩니다. 1번학교, 2번학교 등으로 불리우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