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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러시아에서는

텔레그램 창업자 ... 러시아 떠난 정치 망명객

(사진왼쪽) 텔레그램 창업자인 파벨 두로프

몇일 새 러시아산 메신저 텔레그램(telegram)이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정부의 카카오톡 검열이슈에 맞물려 네티즌들이 찾은 대안입니다. 소위 ‘메신저 망명처’로도 불리우고 있습니다.

텔레그램 이야길 해보죠. 텔레그램의 창업자는 러시아의 페이스북이라 불리우는 브콘탁테(ВКонтакте, 원어식발음 ‘브깐딱쩨’, 이하 VK)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였던 파벨 두로프(29, Па́вел Вале́рьевич Ду́ров /브콘탁테 계정트위터 계정페이스북 계정)입니다. VK시절 그를 따라 다니던 수식어는 ‘러시아의 주커버그’로 우리에게는 낯설지 몰라도 IT업계에서는 꽤 유명한 인물입니다.

두로프가 2006년에 창업한 VK는 가입자만 2억 7천만 명이 넘는 러시아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입니다. 인터넷사이트 트래픽 조사기관인 알렉사 기준 러시아 내 순위  2위, 글로벌 랭킹 23위(25일 기준)의 거대 서비스입니다. 올해 1월에는 글로벌 랭킹 8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었죠. 러시아 트래픽 순위 TOP 10 중 1위 얀덱스를 제외하면 구글이나 유튜브 메일닷루 등 왠간한 포탈, 글로벌 서비스보다 사용자가 더 많은 서비스이기도 합니다. 또한  우크라이나(2위), 카자흐스탄(2위), 벨라루스(2위) 등 동유럽 국가에서도 만만찮은 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서비스이기도 하죠. 그야말로 승승장구하는 서비스인 셈입니다.

하지만 올해 4월 말 두로프는 별다른 경영악화나 실패가 없었음에도 CEO자리에서 의도치않게 물러나게 됩니다. 외부에는 주주와의 불화 및 주주총회 의결에 인한 불명예 퇴진으로 알려졌지만, 두로프는 정치적 외압이라 주장해서 이슈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러시아 정부가 주주들을 선동하고 압박해 본인을 내쫓게 했다는 것의 그의 이야기입니다. 딱히 근거없는 말은 아닙니다. 두로프를 경영자 자리에서 끌어내리는데 앞장선 대주주 메일닷루그룹(VK 지분의 48%)은 푸틴의 이너서클로 분류되는 철강재벌 우스마노프가 막후의 실권자로 있기 때문입니다.

VK 재임시절 두로프는 러시아 정부에게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습니다. 반푸틴, 반정부 성향을 숨기지 않았으며, 러시아 정보기관에서 요청한 VK 사용자 정보 제공과 사전검열 및 정부비판 페이지의 삭제 등 요구를 수차례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러시아 정부당국의 온라인 노이로제도 한 몫합니다. 지난 러시아 대통령 선거 당시 전국적으로 발생한 반푸틴 시위의 사전 집결 아지트로 VK와 라이브저널 등 러시아 SNS, 블로그 서비스가 큰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두로프는 VK 최고경영자에서 물러난 이후 정부비판에 각을 더 세웁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가지고 있던 VK의 지분을 모두 매각한 뒤 러시아를 떠나 해외로 떠나버립니다. 일설에는 카리브해 인근 도시국가의 시민권을 매입했다는 소문도 있었죠. 사실상 해외망명을 한 셈입니다. 더불어 두포프는 (현재 정부체제가 유지되는 한) ‘러시아에 돌아올 계획이 없음’을 공공연하게 천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두로프가 반정부 정치투사가 된 것은 아닙니다. 두로프는 그가 가장 잘 하는 분야의 사업으로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며, 사업아이템은 새로운 형태의 SNS라고 이야기하는 중입니다. 그러던 차에 형제인 니콜라이 두로프와 함께 지난 2013년 8월에 론칭한 텔레그램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텔레그램은 철저하게 보안에 신경쓴 메신저 서비스입니다. 제3자가 모니터링 하는 것 자체를 원천적으로 막아놓은 것이 가장 큰 특징이죠. 대화내용을 암호화 해서 주고 받습니다. 또한 대화창에 옵션을 걸어둘 경우 메시지 확인 후 2초 혹은 1주일 등 일정 시간이 지나면 메시지가 자동 삭제되는 기능 또한 적용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서버에서도 사라집니다. 스냅쳇도 이 기능으로 인기가 높지요.

또한 광고가 일절 없기에 가볍고 빠르게 메시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강점이 있습니다. 더불어 아직까지 해킹에 뚫린 적이 없는 보안이 잘 되는 서비스로도 유명합니다. 심지어 텔레그램은 두로프의 후원으로 지난해 12월 서버 코드 암호를 깨는 사람에게 20만 달러를 상금으로 주는 이벤트를 개최하기도 했죠.

텔레그램은 두로프의 지론이 담긴 서비스이자 러시아 정부에 대한 반발심리가 반영된 서비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검열을 허용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할 수 없게 만든 서비스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모국을 떠난 망명객 두로프가 만든 메신저 서비스에 국내 사용자들이 망명객을 자처하며 몰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 몇일 애플 앱스토에서 국내 사용자가 가장많이 검색하고 다운받고 있는 메시지 서비스가 바로 텔레그램입니다.

이러한 메신저 서비스 망명행렬을 두고 카카오톡의 위기라고 보는 이들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판단하기에 위기라고 말하는 것은 시기상조로 보입니다. 제 아무리 보안이 뛰어난 서비스라 할지라도 사용자들의 관성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또한 다수의 대화 상대를 포괄하지 못하는 메신저 서비스는 존재가치가 취약하고요. 다만 피해당사자가 3,500만의 가입자를 보유한 카카오이기에 감당이 가능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카카오가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이었다면 기업의 존망이 걸린 사태였을 겁니다.

텔레그램이 키워드가 된 이번 일련의 과정은 정치가 산업에 악영향을 끼친 사례로 봐도 무방할 듯 싶습니다. 눈앞의 정치이슈를 이유로 자국 IT산업에 피해를 주지않길 바라봅니다.